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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나이유감 (이빛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31
조회
431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병신년이 끝나간다. 올해 내내 내 손에 들려있던 다이어리를 읽어보니 ‘나름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누구는 엄마 전화 한통에 가고 싶은 대학 문이 열리고 누군가는 코너링만 잘 해도 편한 꿀보직을 보장받지만, 나에게 올해는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는 한 해였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기 보다는 어떻게 될지 몰라 계속 수정해야하는 계획들이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작년 이맘때 유행했던 노래 ‘백세인생’의 가사다. 아직 누가 데려올 나이는 아니건만, 이십 몇세 젊은 나는 뭣이 바쁘지도 모른 채 쫓겨 왔다. 한 해를 시작하는 자세가 희망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XX, 요즘 어떻게 지내?”
“잘 못 지내지 뭐…”
“아, 저번에 ㅇㅇ회사 최종에서 떨어졌다고 했지?”
“응, 이제 그냥 공무원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지 고민하는 거 같더라고.”
“XX가 몇 살이지? 내년이면 28(스물여덟)인가? 좀 많긴 하네… 한 살만 어렸어도 일 년 더 준비하라고 말할 텐데.”


잠자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속이 답답해졌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스물 중반을 넘어 확실한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는 사회 속 자기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사실 백수인) 친구들이 많다. 아직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우리는 정말 뒤쳐진 걸까.


자주 방문하는 취업준비생 온라인 카페에도 이런 글들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29세 여자입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도전일까요? 현실적인 조언 부탁드려요.’


나라면 당신의 도전을 응원한다고,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북돋아주고 싶다. 하지만 댓글의 ‘현실적인’ 조언들은 그렇지만은 않다. 응원하는 댓글만큼 요즘 취업이 쉽지 않으니 회사 그만두지 마시고 병행하라, 그만두시면 후회할 것 같으니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찾아보시라는 반응도 많다. 흔히들 말하는 ‘청춘’의 무모함을 즐기기에 20대 후반은 너무 늦어버린 걸까.


20170201web01.jpg사진 출처 - Pixabay


그 나이에 기대되는 일정한 행동을 사회학에서는 ‘생애주기’라고 부른다. 10대에는 학교를 다니고 20대에는 졸업 후 취직을 하고, 30대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애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 주기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주위에서는 불안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걷는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니까. 물론 생애주기는 사회를 반영해 변화한다. 평균 혼인 연령이 점차 올라가 30대 초반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회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 사이에 문화적 잣대가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노미가 발생한다. 요즘 20대는 이 아노미를 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늦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느껴질 땐, 잠시 시대 탓을 하는 거다. ‘나는 시기를 잘못 타고 난 것이다’라고.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하는 자괴감은 한사람만으로 족하다.


생애주기를 벗어나 살면 또 어떤가. 육십 세도 젊고 칠십 세에도 할 일이 많다는 데 20대면 아직 병아리다. 노래처럼 백 살까지 산다면 아직 인생의 3분의 1도 안 살았는데, 벌써 어떻게 살지 다 정해뒀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 생각한다. 불안해도, 자신의 주기를 만들면서 살면 되는 거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멋대로 내 젊음을 폄하하는 말에 수긍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7년 2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