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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2018년의 ‘빅 브라더’ (주윤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26 16:03
조회
1008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기간제 교사를 십 여 년 넘게 한 끝에, 올해 신규 임용되어 기적을 보여준 친구가 몹시 분개한 목소리로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첫 발령 학교에 처음 출근한 그녀가 받은 업무희망원에는 출신대학과 전공 등의 기본 정보 외에 혼인여부, 임신과 자녀계획 등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정보를 기재하게 되어 있더란다. 그뿐 아니라 교무실 한 가운데서 개인정보를 공개적으로 묻고 심지어 부동산까지 연결해 주며 학교 근처로 이사 오라고 종용하는 등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언사를 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난색을 눈치 챈 교무부장 교사는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 시간 외 혹은 야간 근무 등의 업무 배정에 필요하다고 얼버무리더란다. 늦깎이 신규이기에 심호흡 한번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던 친구는 교무부장 교사의 그 다음 지시(?) 사항을 듣고는 더는 할 말을 잃었다. 3월에 있을 전입 신규교사 환영행사에서 신규교사 장기자랑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학생들 표현대로 ‘헐 대박~’이다! 비슷한 사례는 올해 학교를 옮긴 또 다른 친구에게서도 확인되었다. 그곳도 혼인이나 자녀계획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감독 등의 업무 배정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학교가 교사들의 사적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업무 배정에 공정하게 참고한 경우를 별로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학교조차 가장 사적인 정보를 집요하게 수집하며 개입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친구의 학기 초 이야기를 듣고, 분노와 황당함에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해야 하나 의논을 하다가 이내 이미 우리들의 개인정보가 교육청과 학교에 집적되어 관리되고 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교육기관 등에서 업무편의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NEIS(나이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교사 인적사항에 이미 방대한 내용들이 수집되어 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 항목을 열어보지 않아 잊고 있었을 뿐, 교사로 임용되던 첫해에 키, 몸무게 등 체격사항(도대체 이것을 왜 수집하는가?)을 비롯하여 가족관계(부모, 배우자, 자녀 등)라는 가장 사적인 정보를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제출하여 지금까지 관리되어 왔다. 과연 교육청과 학교가 교직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3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NEIS 철폐투쟁은 학생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전자적으로 집적해 관리하는 방식을 반대하고 개인정보의 불법유통을 막아내려는 노력이었다. NEIS는 모든 교직원들이 입력에 대한 개별 권한을 인증 받고, 자신의 노동실적은 물론 학생들과 보호자들의 인적사항을 기본으로 성적, 행동과 신체발달상황, 처벌기록까지 수백여 가지의 정보를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초등부터 고교까지 축적된 자료는 수년간 보관되며, 교육부는 이들의 자료를 열람하고 통계를 낼 권한을 갖고 있다. 이것이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대면도 소통도 하지 않고 일제히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의 노동과정을 입력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업무희망원


 201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는 국민들의 초· 중· 고 시절의 개인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교사들의 노동과정을 전자통제할 수 있다. NEIS 철폐투쟁을 통해 정보인권의 중요성을 알고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을 강화하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육공무원이라는 신분을 구실로 정치기본권 등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정보인권의 주체의 범주에서도 배제되었다.


 다시 학교 안으로 시야를 좁혀 보자. 학기 초 업무희망원을 통해 교사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관리자들이 사전정보를 파악하여 이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잡무를 줄여주려는 목적일까? 오히려 평교사들을 공적 업무의 영역이 아니라 사생활의 정보를 악용하여 유사시 비난하고 견제하며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미 비혼이나 자녀가 없는 교사에게 각종 잡무나 기피 업무를 배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혼이며 자녀가 있는 교사(특히 여교사)들 역시 별 근거도 없이 가사나 자녀양육 때문에 업무를 소홀히 한다고 앞뒤에서 비난하거나 주요 보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여초집단인 교직사회에서 여교사들의 관리자 진출의 수가 현저하게 적은 것도 일반 기업의 ‘유리천장’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정보인권 문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나의 개인정보를 약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교육 당국에게 이미 수집한 나의 정보를 폐기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공무원의 연가 사유 항목이 삭제되었음에도 학교는 올해도 교사들에게 ‘감사시 지적 사항’이라며 외출과 조퇴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것을 강요하며 근태상황을 전자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교사들의 개인 연락처가 공개되고, 교사들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이미 신뢰와 소통의 기능을 벗어나 ‘24시간 상담소’가 된 지 오래다. 이는 단순히 학생과 그 보호자들의 사이버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돌봄 책무를 학교에 전가하고 있는 사회구조에서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학생들 역시 입시라는 블랙홀 때문에 불명확한 예단과 평가를 받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있고, NEIS 철폐투쟁의 기억은 어느덧 사라지고 학생생활기록부에 집적되는 개인정보의 양은 해마다 알게 모르게 늘고 있다. 학생들의 정보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 사안의 심각성이 오래전부터 중차대하게 논의되고 있으므로 여기서 거론하지는 않겠다.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 관계가 아니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이해할 때만이 비로소 소통과 존중의 교육공동체가 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사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개인으로서 시민이다.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정부와 관리자에게 통제받는 교사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실질적 평등과 민주시민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교육청은 집적한 개인들의 사적 정보를 폐기해야 한다. 동시에 교사들은 학교에서 ‘내 마음에 걸리는’ 바로 그 순간을 외면하지 말고 그 불편의 이유를 자문해 보고, 나아가 교직원협의회에서 용감하게 일어나 이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