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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졸업을 앞둔 너에게 (조예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1-10 11:52
조회
1150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년말이다. 이 시기는 늘 정신없다. 쏟아지는 일에 지친 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보낸 지 오래되었다. 반 아이들과 나름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헤어지고 싶지만 생각뿐이다. 올해도 현대사를 제대로 수업하지 못했다. 종업식 날까지 허덕허덕 진도를 나가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번 2학기에는 아이들에게 근현대 시기의 여러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했기 때문에 중간 중간 맛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미래의 새싹답게 아이들은 교과서 내용이나 내 설명보다 훨씬 풍요로운 주제로 수업을 이끌어 주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누구는 어느 대학 갔더라. 아쉽게 떨어졌다더라. 정시에 어느 학교를 지원한다더라. 직접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도 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서로 입시 결과를 모르다가 다음 해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소식도 곧잘 전해졌는데, 최근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



사진 출처 - 필자


 생각나는 아이들이 있다. ㄱ은 통통 튀고 배포가 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절대 흔들리지 않고 늘 긍정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해맑게 다가와 “쌤, 이건 왜 해야 해요? 안 하면 안돼요?”하고 물을 때는 귀엽기도 했다. 크면 자신의 일을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잘 해나갈 것이다. 친언니로 삼고 싶은 아이다.


 ㄴ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작은 방에 살면서 악바리처럼 일하고 공부했다. 중국어를 잘 하고 흥미로워하는 아이라서 중어중문학과에 아슬아슬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난 이듬해 봄, 피자집 아르바이트 복장으로 학교에 왔다갔다고 들었다. 입금해야 할 첫 등록금에서 돈이 모자랐고, 어머니는 집에 돈이 없다고 그러셨단다. 순간 멍해졌다. 수능 후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 아이는 계속 피자집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아이다.


 ㄷ은 고민이 많았다. 나도 잘 모르는 어려운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즐겨 읽었다. 농담 삼아,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했다. 박노자씨 글을 보고 흥미로워하기에 집에 있던 그분의 책을 몇 권 갖다 주었더니 좋아했다. 근현대사를 가르칠 때 사회주의에 대해 살짝 비판했더니 다가와 “쌤 우파지요?”라고 슬쩍 묻기도 했다. 누군가는 쉽게 다녔을 고등학교를 참 힘들게 고민하며 다녔다. 쑥쑥 잘 성장할 아이인데 대학에서는 그걸 모르고 자꾸 불합격의 딱지만 붙였다.


 ㅁ은 집이 아주 멀었다. 혼자 떨어져 우리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누구보다 잘 적응했고 친구도 많았다. 말이 많지 않았다. 가끔 툭 던지는 말에 애정이 숨어 있기도, 가시가 돋쳐 있기도 했다. 그 해 우리 학교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ㅁ은 누구보다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그 겨울을 가장 힘들게 보낸 아이 중 하나가 그였다. 이듬해 가끔 만나 말을 걸면 씩 웃기만 했다. 나보다 큰 아이다.


 학년말이다.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작년처럼 또 일처리만 하다가 급하게 헤어질 확률이 크다. 매년 새로 만나는 아이들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기억에 진하게 남는 아이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아이도 있으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있다. 그들 기억 속 나도 그럴 것이다. 바쁘게 헤어지는 것이 헛헛함을 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그들을 응원한다.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학교를 떠나 어느 순간 힘들고 좌절하더라도, 그 순간 한 번 더 힘내기를 바란다.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