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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것'들의 퇴사, 개척을 향한 도전 (강은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55
조회
506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1년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과도한 업무와 근무시간, 그에 반해 적은 월급이 대외적 이유였지만, 날 괴롭힌 가장 큰 이유는 ‘배워온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이었다. 남을 도와야 한다고 배웠기에 동료나 상사가 도움을 요청하면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미뤄진 그들의 일은 모두 내 일이 되어버려 떠안기가 부지기수였다. 퇴사자가 발생하면 그 1인분의 일도 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업무는 늘었다. 나도 좀 편해지고 싶었기에 어느새 그들처럼 뺀질거리며 업무를 피할 줄 아는 능숙한 사회인이 되어갔지만 그는 내가 아니었다. 그런 태도는 내가 배워온 윤리가 아니었다.


지난 9월 방영했던 TV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가 한창 젊은이들 사이에 화제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학벌과 스펙을 갖춰 결실을 맺었지만 1~3년 차, 심하게는 1년도 못 채우고 끈기 없게 그만둬 버린 청년들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들은 이른바 ‘똥군기’, 도가 지나친 회식 문화, 폭언과 폭력, 성차별 등 개인의 인권이 짓밟히는 근무환경에 회의감을 느껴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 어디 대기업뿐일까. 나 뿐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도 대중소기업이나, 학교, 공기관, 매장 영업직 등 다양한 곳에 종사하고 있지만 직장생활에 대해 들어보면 다 똑같다. 내가 이러려고 부모님 고생시키며 몇 년간 공부하며 이 자리에 왔나 싶은 한탄들 천지다.


다큐 속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상사들은 “요즘 애들~” 운운하며(신입면접자들이 엄연히 20대 후반 이상의 성인임에도 방송에서 이런 호칭을 쓰는 것도 거슬리지만...) “기본도 모르는 개념 없는 신입들 때문에 업무효율이 떨어져 손해”라고 자기네 사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 세대들이 자초한 것 아닌가? 어이없는 신입을 만든 것도 윗세대들의 교육과 사회이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배우면서 자라온 우리 젊은 세대들은 어느 정도 머리가 익어가는 나이가 될 때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시작해 경쟁 속으로 끌려간다. 나를 돌아보는 성찰? 인성교육?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좋은 대학 가야지”, “대기업 가야지”, “연봉이 이 정도 되는 곳은 가야지” 같은 강박에 시달리며 고생 끝에 입사하지만, 이제까지 쌓아온 가치관과 현실 간 괴리가 찾아온다. 한길만 보느라 경험 못한 성장통을 이십대 후반, 서른에 이르러 된통 치르는 것이 현재 서랍 속에 사표를 숨겨둔 젊은 일개미들의 현실이다.


20161011web01.jpg사진 출처 - 양경수 일러스트 <그림왕 양치기 약치기>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 참고 지내야 해, 지나가는 거야, 다 그런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뎌온 기성세대는 끈기 없는 젊은것들이 심히 못마땅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던 그들에게는 한 곳만 파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괜히 나오겠나. 우린 그런 거 없다. 윗세대들이 열심히 우물을 파던 삽 대신 우린 다양한 길로 연결되는 그물, 네트워크를 가졌다. 사표 쓴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꿈을 찾아, 곧게 뻗은 좋은 길 차 버리고 험한 여정에 나선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외로 나가거나 알바, 프리랜서로 관계망을 형성해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도 있다. 다큐에는 그런 자식들을 걱정하고, 보기엔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원망하는 부모들도 나오지만, 씁쓸함을 뒤로 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 후회 없이 살라.”는 응원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보낸다.


나도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처음엔 앞날이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두 달 동안 여유 있게 지친 심신을 달랜 후 더 조건이 좋고 궁합이 맞는 곳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이 고생하는 회사를 각자 사정대로 그만두고 나오는 청년들을 철없다 손가락질하는 윗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당신들의 ‘애들’이 아니다. 퇴사 이유가 아주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그 개인에게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이다. 부당하고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은 어딜 가나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찾아갈 줄 아는 우리는 어른이다. 앞날이 위험하고 잘 보이지 않더라도, 도전할 줄 아는 우리는 청춘이다. 쯧쯧, 혀를 차기보다 응원해달라. ‘젊은 것’(따옴표)들의 퇴사는 끈기 없음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낫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시작이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