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피해자가 힘들다 (박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54
조회
431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옆집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보통 여자의 괴성이나 통곡소리가 들린다.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할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지금 112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평소에 지나다니며 마주친 그 집 부부의 모습과 새벽에 들려오는 괴성의 추이를 듣고 있으면 한쪽이 얻어맞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이 요즘에는 약간 타협적으로 변했다. ‘내가 지금 112에 신고하면 오지랖이겠지.’하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언젠가 금태섭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본 후로 그렇다.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를 주변 이웃이 신고하고, 법이 엄벌하면 정의를 실현하는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두 부부가 완전히 헤어지지 않는 이상 남편을 수세에 모는 상황은 아내폭력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고뇌가 묻어있었다.


매년 몇 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하고 살해당할까? 여성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매년 ‘분노의 게이지’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지난 3월 발표된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91명이다. 이 정보의 토대는 ‘언론에 보도된’ 기사다. 보도되지 않는 사건은 훨씬 많을 테니 사실상 최소한의 통계인 셈이다. 내 경우에는 옆집 부부싸움을 신고할까 말까로 새벽마다 스스로와의 투쟁을 하느니, 여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라도 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겠다고 판단한 탓에 올해 초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조사된 통계를 발표하는 관례상 당시 2015년 한 해 통계치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 작성되고 있는 단계였고, 나는 2015년 1월에서 3월까지의 분량을 맡았다. 그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선생님 중 한 분은 걱정의 언사를 보냈다. “이런 자료 자꾸 보다보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그러니 쉬엄쉬엄 하세요.”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사실이다. 워낙 관심과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던 분야라 새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건 큰 자만이었다.


20161005web01.jpg

사진 출처 - 알렉산드로 팔롬보, #StopViolenceAgainstWomen 캠페인


여성폭력은 기본적으로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히는 구도라는 점에서 모두 악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정에서 남편에 의해 일어나는 아내폭력이 가장 비인간적이다. 그 가정에 자녀가 있을 때 그렇다. 아내에게 갖은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녀에게 직간접적인 학대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례 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가 14살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욕하도록 강요했다. 물그릇에 물을 떠와 5차례 어머니 머리에 붓게 하고, 허리띠로 어머니를 세게 30대를 때리라고 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인 내가 너를 더 세게 300대를 때릴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말이다. 이건 광주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결국 남편은 아내 폭행뿐만 아니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다. 많은 경우 여성폭력은 아동학대까지 동반한다. 그런데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든 건, 아내가 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는 생존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남편은 아동복지법 위반만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20161005web02.jpg사진 출처 - 알렉산드로 팔롬보, #StopViolenceAgainstWomen 캠페인


옆집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다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아주 가까운 공간에서 누군가가 꽤 심각해 보이는 폭행에 노출된다고 추정되는데, 덩달아 학대당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할 때 인간으로서 어떤 비참함을 느낀다. 이 비참함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단체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교육프로그램에 사활을 거는 것 같다. 가해자가 쉽게 양성되지 못하는 사회적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서, 당장 현실을 바꾸기는 힘들다. 내 옆집에,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설령 외부에 그 폭력을 알려지게 만들어서 단기적으로 가해자가 처벌받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종래에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감당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란해진다. 이건 실천할 수 없는 정의다. 가정이라는 영역은 너무 사적인데, 결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처벌은 공적인 영역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간극을 피해자의 고통 없이 메꿀 수 있을까?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