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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교사를 그만두려구요 (방효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40
조회
1242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 일동 침묵.


내년에 사표 쓰고 캐나다로 갈 거예요. 젠더이론을 더 공부하고 싶어요. 교사하는 거 재밌는데, 학교 문화를 버티기 어려워요. 교장의 부당한 지시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튀는 행동 하지 말라며 제 팔을 붙잡아요. 학교 운영 계획이나 실행 절차가 불합리한 거 당신들도 아는데, 관행이고 말 해봤자 안 바뀐다며 동료 교사에게 단속당하는 일상을 못 견디겠어요. 생각의 방향이 같은 선배들은 좀 더 싸우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시켜보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왜, 혼자, 그래야 돼요? 그러고 나서 후폭풍도 오롯이 혼자 겪고요?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요. 문제라고 느끼는 제가 문제인 것처럼 취급하죠. '탈조선'하는 게 상황을 회피하는 건가요? 행복하게 사는 길이 보이는데,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 왜요?


초등학교 여교사라고 소개하면, 결혼정보회사 신붓감 1위라던데 하며 피드백을 받곤 해요, 아직도. 제 나이가 결혼하기 딱 좋은 20대 후반이라며 소개팅 자주 하냐고 물어보고, "치마도 자주 입고, 예쁘게 하고 다녀." 하면서 외모 평가를 칭찬으로 하는 교사들의 시선이 불쾌합니다. 학교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제 사생활에 대한 조언과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잔소리. 이런 문제에서 50대 전교조 선배들과 교장, 교감 같은 관리자의 다른 점이 뭐죠? 학급 운영, 학교 내 의사 결정 구조의 민주화, 동료 간 감정 소통에 대한 관점과 실천이 다릅니까? 글쎄요. 요새 관리자들은 대화 기술이나 통제 수법이 세련되었어요. 교사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적절히 위로하고 상담해가며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냅니다. 전 내년에 외국으로 어학연수부터 다녀오려고요. 거기서 내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방식의 사람들을 만나야겠어요.


# 진짜요?


아니, 그러고 싶은데 다른 직장 잡기는 어려울테고. 교사 때려 쳐도 무엇을 하던지 밥은 먹고 살겠죠? 아유, 모르겠다. 일단 연수휴직을 신청합니다. 요즘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학교가 재밌었는데, 이제는…. 교사 15년 했는데, 출산휴가 3개월 빼고 한 해도 안 쉬었어요. 임계치에 다다른 느낌이에요. 할 일이 하루 종일 들이닥치고, 끝없이 무엇인가 하고 있고, 애들은 말 안 듣고, 학부모들은 아침저녁으로 근무시간 아니어도 연락합니다. 지쳤어요.


20170517web05.jpg사진 출처 - 범페미네트워크


# 그런 말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아요.


7080 운동권 선배들은 감수성과 갈등해결 방법이 그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일을 하는 방식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에도 일방적입니다. 의견을 제시하면 당신 말만 해요. 제 의견에 대응하고 소통하셔야죠. 대화라는 게 말을 주고받는 건데, 이 분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하니까 젊은이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물어본 적도 없는 자기 경험을 한 시간 내내 말씀하시면 저는 언제 끼어듭니까? 당신 말씀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은 재미없어요. '나이주의'라는 거 들어보셨습니까?


# 2


사회생활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두고 싶은 다양한 이유가 수시로, 혹은 때때로 찾아온다. 교사는 그만 두기 아까운 직업이라고들 한다.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하면 매달 연금도 나오고, 평소에도 지시에 순응하고 살면 다른 직장에 비하면 '잘릴' 위험이 적다. 정해진 시간에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고, 아침에 눈뜨기 어려운 지경의 체력이 남았을 때 방학이 온다. 학벌에 비해 월급은 적지만 건강관리를 잘하면 평생 벌 수 있다고 계산해보면, 30대에 그만 두기 아깝다. 8~13살 아이들 수업, 학부모 상담, 선후배 교사 및 부장, 교감, 교장과의 인간관계와 업무 지시,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감정적, 이성적인 종합 사안을 처리하고 컴퓨터에 입력하고 다음 날 수업할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내 안의 가치관들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순간의 답답함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착각해도 괜찮다. 그런데, 지난 두 달 동안 만난 2,30대 선생님들의 대화 소재는 '사표', '휴직', 그도 아니면 '병가'였다.


# 3


성차별이 만연한 이 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는 교육 공무원인 초등학교 여교사는, 눈치 없이 퇴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녁이 되면 집으로 다시 출근해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성이 교사생활 하는 목표가 자아실현이 아니라, 생계유지가 맞는데도, 아이에게 신경 써 주지 못할 때 "내가 얼마나 벌려고 내 자식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하나" 싶은 현실. 가사노동을 부부가 철저히 분담하거나 남성이 더 하는 경우는 '없다'. 평등하다고 보이는 당신 친구의 사례 말고 객관적인 통계를 보라. 맞벌이 한국 여성은 남편보다 무급가사노동을 4배 이상 하고 있다.(3시간 13분 vs 41분) 불행하게도, 여교사들이 공적인 자신의 직장 생활에 충실할 수 없는 상태로 매일을 견디는 장면을 보았다. 집에 가는 길에 유치원 오후반에서 아이를 픽업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고, 밤 11시에 컴퓨터를 켜서 학교에서 가져온 업무를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아이를 깨워서 먹이고 입혀서 같이 집을 나서는데, '집안일과 육아를 매일 해도 보람찬 것'은 '모성 본능이라는 게 엄마가 되면 자동으로 생기기' 때문인가?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말라는 40대 여교사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들었다. 아니,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편하게 살라는 기혼과 미혼의 50대 여교사들을 만났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30살 안팎의 여교사들이 직장을 그만 두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본다. 자기가 생각했던 직업 생활은 이런 게 아니다. 그들은 고통을 더 겪고 싶지 않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


# 4


오늘 아침, 결혼했고, 3살 아이가 있고 뱃속에 둘째를 가진 같은 학교 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일주일 병가를 썼어요. 전에 말씀하신 학급 운영 공부를 같이 하고 싶은데, 그 모임에 '이름'만 올려놓아도 돼요? 저는 학교를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 사람들을 만날 상황이 안돼요. 주변에 애를 봐줄 데가 없거든요. 혼자 '이걸' 감당해야 돼요."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1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