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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삼천지교(自炊三遷之敎) (김인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35
조회
388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이하 이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박모(23)씨는 지난 1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다. 박씨가 구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방은 창문이 없었다. 주방 바로 옆에 있어 음식 냄새와 각종 소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박씨는 “월세와 생활비를 고려했을 때 구할 수 있는 집은 그것뿐이었다”며 “창문 있는 방을 알아봤지만 매 달 10만원을 더 내야 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옛 말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에게는 자취삼천지교(自炊三遷之敎)가 더 다가온다. 적어도 세 번은 집을 옮겨봐야 좋은 환경을 가진 방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졸업 전까지 같은 방세를 지출하고 싶다면, 물가 상승으로 세 번 정도는 방을 옮기게 된다는 뜻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취생과 하숙생이 배우는 세 가지 교훈. 집 없는 설움, 혼자 살면 다 돈이고,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신촌 대학가 하숙비는 지난해와 비교해 최대 10%, 자취는 30% 이상씩 올랐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한 달 생활비는 최소 30~40만원이다. 줄일 수 있는 건 방세뿐이다. 집에서 누리는 안정감, 편안함은 사치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방, 빛 한 줌 없는 방 안에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청춘이 어떤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올해 들어서는 하숙집에서 주던 밥도 줄어간다. 주말과 평일 점심에는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이 당연한 일상이 됐다.

신촌 대학가에선 공동 행동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총학생회 중심이다. 심지어 학생회 선거 때 공약집에서도 학생 주거권 문제는 점점 발견하기 힘들다. 올 봄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에는 5년 만에 2001명이 모인 학생 총회가 열렸다. 반면 주거문제는 일부 지역 출신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 관심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대만 봐도 수도권 이외 출신 학생이 40% 이상이다. 수도권에 살더라도 거리가 멀어 통학 대신 하숙이나 자취를 선택한다. 대학가에서 주거 문제로 고민 하는 학생은 늘어간다. 주거는 곧 복지다. 누구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 나서야 한다.

 

20110420web01.jpg반지하 자취방에서 바라본 창문 밖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대는 대학원생을 제외하고 학부생을 위해 2개 동의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수용 비율은 2010년 기준 7.8%로 신입생은 615명, 2~4학년 재학생은 98명만 받을 수 있다. 기숙사 입주를 위한 경쟁률은 신입생 1.7:1, 재학생은 7:1 이상이다. 지방 학생들에게 기숙사 입주는 로또가 된지 오래다.

이대 국제 기숙사가 2012년 2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외국인 학생과 교원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배려가 느껴진다. 학생기숙사 증축은 아직도 계획 중에 있다. 재학생들에게 안정적인 기숙 시설과 학교의 배려는 먼 이야기이다.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주택점거운동 등으로 불리는 스쾃(squat) 운동은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공공성과 권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미국의 주택점거운동, 브라질의 땅 없는 사람들의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머지않아 이대생들의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점거운동, 신촌 대학가의 집 없는 젊은이들의 운동도 일어날 법하다. 계획만 있고 해결은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자취 첫날밤이 떠오른다. 잠도 밥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잠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시텔 월세 57만원과 생활비 30만원을 내주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이 큰 도시 안에 돈 걱정 없이 발 뻗고 편하게 잘 공간이 없다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푸른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 청춘이라고 한다. 하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가 내게는 현실이다. 방세 걱정에 파랗게 멍든 가슴이 우리의 청춘이다.

자취삼천지교를 통해 얻게 된 진정한 교훈.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리. 싼 방을 구하려 발품을 팔던 그 시간과 노력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보았다면, 조금 더 일찍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적극적으로 요구해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취 생활 3년차, 졸업을 앞둔 학생의 뒤늦은 후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