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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는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김시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6:27
조회
498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기숙사 생활 6개월째 일이다. 박사 논문 마지막 심사를 앞두던 때였다. 논문 심사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기숙사 행정실에서 모든 기숙사생에게 종강일에 맞춰서 퇴사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종강일은 학생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학부생은 종강일 전후 5일에 기말고사를 치르고, 대학원생은 종강일 전후 7일에 소논문과 같은 과제를 제출하거나 나처럼 학위 논문 심사를 준비한다. 학점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 처지에서는 피가 마르는 시기다. 대학이 아닌, 보통 임대업자도 이렇게 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숙사에 입사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20대 학생시절에는 얻지 못했던 기숙사 생활 기회가 30대 중반에 생겼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에 생겨난 기숙사가 처음에는 좋았다. 학교 중앙도서관과 가깝기 때문에 논문 작업을 하다가도 피곤하면 언제든지 기숙사로 돌아와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기숙사가 학업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가 맞기는 하다.


그런데 종강일에 퇴사를 하라니! 그러면 이사가 하루아침에 끝나는가? 이삿짐을 한 번도 싸보지 않은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너무 편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방학에도 거주하는 사람인데, 순전히 기숙사 행정 편의를 이유로 짐을 싸서 외부에 보관했다가 다시 다른 방으로 옮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대로 같은 방에 살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다. 또한, 기숙사에는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몇몇 학생들은 그 기간 동안에 호텔 방을 전전하기도 했단다. 비용을 아끼려고 기숙사에 들어왔다가 시험 및 과제를 마무리할 시기에 낭패를 본 것이다.


새로 지은 기숙사라 행정의 미숙함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행정실도 올해 초에나 겨우 갖춰졌다. 학부생은 ‘사생회’라도 있어서 그나마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생은 사생회도 없다. 학생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행정상의 편의만 고려하는 그들! 기숙사를 새로 지었으면 직원을 충원해서라도 행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새로 지은 기숙사 비용은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았다. 가령 고시원 방만한 크기의 1인실은 한 학기에 약 140만 원 정도 한다. 월세로 따지면 대략 월 40만 원 선이다.


왜 기숙사가 학생들의 학사 일정을 보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행정 직원의 관리 편의를 도모하는 공간이 된 것일까? 여기서 ‘무엇이 가장 먼저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듯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는 학생의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를 철저히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학생이 가장 학업하기 좋은 학교가 전통 있는 명문학교이지 않을까?


너무 답답한 나머지 총장님께 호소문을 썼다. 설마 답변이 오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했다. 뜻밖에 이번에 새로 선출된 총장님은 반응을 보이셨고, 기숙사 관장님께서 회신을 주셨다. 답변인즉, 행정상 관리 문제 탓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요지이고 대학원생은 내년부터 안 옮기게 해준단다. 아! 그럼 진즉부터 안 옮기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는 살던 방에 그대로 살게 해서 종강일 즈음에 방을 옮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생겨난 행정실에서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아무튼 종심 준비도 벅찬 시기에 행정상의 관리만 믿고 옮겼다. 그런데, 방을 옮겨보니 방청소가 하나도 안 되어있다. 도대체 왜 옮기게 한 것일까? 행정상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20170724web01.jpg새로 생긴 기숙사 외관
사진 출처 - 필자


얼마 전, 대학교 주변 임대업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기숙사의 신축을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는 임대업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사 행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기숙사 행정을 겪고 보면 정말 비판받을 대상은 기숙사 행정이 아닌가 싶다. 학교 주변 임대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교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의식을 잊어버린 채 어쩌면 학교가 학생을 상대로 임대업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이 글은 2017년 7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