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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 들고 달리기 (서진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43
조회
856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2011년, 크로스핏(Cross-Fit)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로스핏을 하고 있던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게 무슨 운동이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 그럴 때면 ‘단기간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쾌한 설명을 들었다. 크로스핏은 ‘아령 들고 달리기’라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신체 능력을 골고루 향상시키는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예를 들어 크로스핏은 턱걸이 세 개, 100미터 달리기, 팔굽혀 펴기 열 개를 3회 반복하는 식이다.


한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나는 남성, 학생, 이성애자, 노동자 따위의 정체성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정체성을 느끼며 달려오던 내가, 정당을 만나 선거를 치르게 됐다. 아령을 들게 된 것이다. 아령을 드는 것은 무거웠지만 중독성이 있었다.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민으로서의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20170530web01.jpg사진 출처 - ‘The Identity Issue, 2017’, <WINDMILL>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었기에 기존의 춤, 연설 위주의 선거운동을 지양했다. 촛불이 만든 대선인 만큼, 촛불정국에서 등장했던 적폐 내용을 피켓에 담고 물풍선을 던져서 맞추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내가 속한 경기도의 부천, 의정부, 평택, 수원 등을 돌아다니며 청년 당원들과 ‘물풍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어린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고, 덩달아 따라온 부모들에게 우리의 정책을 홍보할 수 있었다.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들어올 만큼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장미대선을 향해 뜨겁게 달렸던 열정의 순간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 맡아보는 대표 역할에 좌충우돌하기도 했다. 대표로서 ‘역할’을 배분했어야 했는데 무턱대고 내가 맡아서 모든 걸 하려했던 점이나, 대표로서 처음으로 정당 체계에 적응하고 소통하는 모습이나, 대표성을 가진 기구의 장으로서 감당해야하는 최소한의 희생 등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학생으로서, 연인으로서의 모습에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게 생애 첫 선거가 끝났다.


다시, 일상이다. 돌이키면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령을 들고 오랫동안 달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이 ‘진보’를 추구하기에 부족했음에도, 진보를 추구하는 집단에서 활동했던 것이 내겐 ‘아령’이었던 것도 같다. 아령을 내려놓고 짧지만, 격렬했던 ‘아령 들고 달리기’를 천천히 돌이켜볼 때가 왔음을 느꼈다.


크로스핏에는 ‘테스트 데이(Test Day)’가 있다. 한 달 전 나의 기록과 비교하는 날을 말한다. 부족했던 모습을 부여잡고 있는 대신, 맨몸이 아닌 아령을 들고 달리려했다는 사실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간다면, 다음 테스트 데이에 나는 더 성장해 있지 않을까?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3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