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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성(性)적은 F학점? (김인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56
조회
369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콘돔 쓰면 안전하다고? 이거 말도 안 된다. 자궁 내 루프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4월6일)

16년간 지속된 인기 강의의 한 대목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이번 1학기에만 400명의 학생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 인기는 높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문제 강의다. 바로 한양대 ‘성의 이해’다.

강사의 말은 교재에 견주면 애교 수준이다. 교재는 <성 과학의 이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그냥 가관이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본능이다. 만일 미개한 곳에서 억제되지 않고 산다면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강간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p.234)

“완전한 질외사정인 경우는 정자의 존재가 부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임신이 될 수 없다.”(p.88)

이 수업은 남학생만 듣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남성 중심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설사 남학생만 듣더라도 여성을 이렇게 비하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성의 이해’는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잘못된 성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을 확산시킨다. 서울의 명문대에서 지금껏 이 강의가 16년째 계속됐다는 것 자체가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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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이해 수업이 진행된 강의실 앞에 붙여진 대자보



이런 돌출적 강의는 사실 대학 일상의 성차별이 배경으로 자리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여성 오모(21)씨는 축제 때 경험을 털어놨다. 동아리 주점을 하면 거리에서 손님을 끌어오거나 테이블을 돌며 술을 나르는 일은 모두 여학생에게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자들이 해야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선배들이 시켜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게 낫다고.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죠. 삐끼짓 할 때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야 주점 인기도 올라간대요.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오라고 말하기도 하죠.”

오 씨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조금 문제의식을 느끼는 공대생일 뿐이다. 축제는 축제니까 참고 넘어가려 했지만, 강의 시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이었죠. 교수가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해보라고 했어요. 근데 여학생이 나서면 1점씩 더 가산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점수를 따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불쾌했죠. 점수 더 준다는 건 여학생들한테 더 이익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여성을 깔 본 거죠. 여자란 이유 그 하나로.”

오 씨가 불만을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괜히 말꼬투리 잡는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 그 정도도 못 받아주면서 사회생활은 하겠니. 심지어 ‘꼴페미’라고 조롱받는다. 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이란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작은 목소리를 낸 건데, 너그럽지 못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몰아간다. 이건 성차별에 이은 두 번째 폭력이다.

친구들은 그나마 낫다.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교수 선배로부터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이런 말을 들어보라. 불만은 곧 반항으로, 그 대가는 불이익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꾸 이러니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참고 감춘다. 괴롭고 또 무서우니까.

‘성의 이해’ 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B+~A다. 우수 강의란 뜻이다.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대학의 양성평등센터라는 곳이 내놓은 대답은 더 웃긴다.

 

20110628web03.jpg 교재 <성 과학의 이해> 중에서 성폭력에 대한 언급 부분



“현재 사안은 강의 내용이나 강사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어서, 센터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명백한 성희롱 언행이라고 판단된 경우가 아니면 센터에서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바쁘다”였다. 반론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먼저 나선 건 학생들이다. 지난 4월 인터넷에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개설됐다. 이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강의 내용과 교재에 대해 반박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나와 함께 대자보를 쓰고 학교 곳곳에 게재하기도 했다.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7월에는 해당 강사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은 물론 총장과 학장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노력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강의의 잘못을 지적한 대자보는 강제로 철거됐다. 일부는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기도 했다. 이들은 강의 반대 활동과 그에 따른 언론 보도가 학교 망신을 불러왔다고 했다. 묻자. 잘못된 성지식을 주입시키고 성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 그걸 가르치는 수업이 버젓이 이뤄지는 망신보다 더한 망신이 있을까.

1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 한양대 ‘성의 이해’는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한양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과연 성 지식과 성 차별 항목에서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성의 이해’가 또다시 6월 28일부터 진행되는 여름계절학기 과목으로 개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정말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

 

* 사진 및 내용 출처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모임인
cafe.daum.net/realsex와 해당 카페 운영자와의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