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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마이크, 소셜 네트워크 (조재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19
조회
392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홈페이지 방명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가 돼 있었다. 원인은 웹상의 한 동영상에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남’이었다. 한 청년이 지하철 내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 후 이 영상은 인터넷에 던져졌다. 한 트위터 글은 수없이 리트윗되었다. 글의 내용은 ‘지하철 막말남은 OO대학교 OOO’였다. ‘막말남’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는 테러를 당했다. 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학교의 게시판 또한 그러했다. 잠시 뒤 학교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동명의 재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 네티즌의 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명의 학생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순식간에 ‘패륜남’이 되었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공공의 적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 유포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은 미니홈피의 게시 글에서 시작됐다. 아나운서 본인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글은 현직 야구선수와의 성적관계를 담고 있었다. 잠시 후 최초의 글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SNS라는 확성기가 이용됐다. SNS 사용자들은 각기 한마디씩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더해졌다. ‘소셜이 아닌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끝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개개인에게는 짧은 글 한마디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한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SNS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주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가족, 친구들과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치인, 연예인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SNS가 계층 간의 소통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목적 지향적인 참여행위가 유도된다. 최근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은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였다. 이처럼 SNS는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한다. 이미 대세가 돼버린 상황 또한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썬 충분치 않다. 인터넷 전반의 문제 또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하나의 중요한 권력이다. 이를 이용해 ‘개인 대 집단’의 구도에 놓일 땐 폭력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해 개인용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SNS는 자신만의 일기장이 아닌 것이다. 의사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글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SNS의 발전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기성언론의 ‘색깔사냥’, ‘마녀사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론 사냥’에 염증을 느껴왔다. SNS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가 비판해 온 기성언론의 행보를 따라가선 아니 된다. ‘신상 털기’에 이은 인신공격은 ‘여론 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양자 모두 ‘무차별, 무책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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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전국 트위터 강정당 회원들이
지난 7월 2일 제주시청 앞에 모여 강정마을 “절대보존지역해제”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중이 참여를 유도하는 힘으로 SNS가 활약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포털사이트의 신상정보유출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개인정보가 개인의 것이 아니 게 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신상 털기’에 힘을 보탠다. SNS의 빠른 정보 교류는 이에 날개를 달아준다. ‘신상 털기’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법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위 정보일 경우의 구제수단도 없다. 포털 사이트들의 레이아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SNS의 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글의 위치는 뉴스와 인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SNS의 글은 뉴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 더해져 있다. 필터링도 전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공공 혹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 있다. SNS에서 드러난 사실이나 주장을 기사화할 때이다. 해당 주장이 극히 일부분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론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이메일을 접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SNS 신뢰도 조사의 결과도 주목해볼만하다. SNS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나 되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12.3%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였다(출처 - 에스코토스 컨설팅 '2011년 소셜미디어 참여 연구'). 기성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들에게 SNS는 ‘개인 언론’이 되었다. 기성언론이 무관심한 영역에 대한 ‘대안 언론’이기도 하다. 기성 언론의 권력자들은 SNS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SNS의 심각한 부작용을 이유로 든다. 우리 스스로가 정화하여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통로’를 확고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