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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글로벌 캠퍼스? (유혜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18
조회
353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전철역까지 운행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지 5분 남짓.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어폰 사이로 오고가는 수많은 중국어의 행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버스 뒤편을 바라봤다. 버스 한 쪽에는 10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중국의 대학교인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히잡을 두른 여학생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나는 2년 전 지도 교수님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3일만 시간을 내달라는 교수님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님이 사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대학 당국이 뽑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증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교수님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신 것이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지인을 따라 혹은 자국에서 입시에 실패한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느 유학생처럼 서툰 외국어(한국어) 실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 문화와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빠르게 3일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2년 동안 통 연락이 없던 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의 한국 생활이 어땠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쉴 새 없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초라며 한 발짝 물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과 한국 학생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해외에 지사까지 두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때 대우와 한국에서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Y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장OO씨(25)는 "각 대학별로 유학생 지원 담당자가 있긴 하지만 증가하는 유학생의 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의 수강이나 언어, 학교생활 등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고 털어놓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유학생에게 친절한 교수님도 있지만, 외국인 학생을 한국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정OO씨(23,여)는 "일부 유학생이 대리출석을 하거나 학기 내내 결석을 하고 시험만 보는 경우도 있어 우려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Y대를 졸업하고 취업한 중국인 루OO씨(26)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엄격한 외국어(영어나 일본어) 실력이 요구되지만 일부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학 입학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대학 입학 기준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는 후문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이중적인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백인 유학생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롯되는 인종차별적 대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였다. 대다수 한국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외국인 학생이 많은 '글로벌' 캠퍼스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강의실에서는 유학생을 외면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학점 경쟁이 심한 오늘날,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하는 경우라면 함께 과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얻기보다 다른 팀원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서울의 S 사립대를 다니는 한국인 유란희(23,여)씨는 "중국어나 일본어 강의가 개설되면 한국 학생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강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경험담도 털어놨다. 일부 동아리나 언어교환 프로그램, 몇몇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면 대다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과 어울리기는 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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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캠퍼스 내에는 그 어떤 제도적, 인식적 차원의
개선도 일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캠퍼스 내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학과 단위의 자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어눌한 말투를 가진 외국인 유학생의 자기소개를 듣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강의실에서도 팀별 과제를 위해 팀을 짜다보면 외국인 학생 한두 명쯤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3700여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2003년 1만 명을 넘어서더니 2010년에는 8만 3000여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전체 대학생 중 0.1%에 불과하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이제 2.3%까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양적인 캠퍼스 글로벌화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내실은 어떠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차적인 성찰은 외국인 유학생의 학생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대학 당국에게 필요하다. 대학 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학의 '글로벌화'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많은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한국 학생과 유학생 모두의 학업과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수만을 늘려 각종 대학 평가의 국제화 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얻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일부 지방 사립대는 부족한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선발해왔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방관한 채 쉽게 입학 승인을 해주었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에만 몰두한 나머지 학생 관리 서비스가 부실함은 물론 한국 학생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이나 불법취업이나 불법체류 등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화' '다문화'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화두다. 대학도 앞장서서 이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수적인 증가와는 반대로 질적인 차원의 '글로벌화'에 대한 의문을 감출 수가 없다. 적절한 제도와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는 자세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면 이는 사실상의 '폭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오는 길,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한 친구가 자신은 언제쯤 교내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