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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그러라고 만든 법이 아닐 텐데? (김종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36
조회
618
‘우리 심정 누가 알까요’ 벙어리 냉가슴 아파트 경비원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40여 년 전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은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개탄하며 근로기준법전을 손에 들고 분신했다. 그가 불타오르며 외쳤던 말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그의 분신 이후 노동계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분신 이후 40년이 지난 오늘날, 근로기준법이 도리어 노동자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그 피해자는 바로 ‘감시단속적 노동자’(이하 감단 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전은 감단 노동자를 ‘감시와 단속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상대적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바로 경비원이다.

근로기준법 제61조는 감단노동자들에게 근로시간, 휴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근로시간의 상한규제가 없어짐에 따라 무한정의 장시간 노동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실제로 아파트 등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직의 경우 24시간 맞교대 근무가 일반적이고 교대조가 바뀌는 경우 등은 48시간을 연속해서 근무하기도 한다. 일요일이나 명절도 휴일로 적용되지 않아 1년 내내 격일교대제로 근무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임금도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된다. 야간근로수당 등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한 모든 시간외 가산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고, 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도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최저임금법에 의한 최저임금 규정도 감액 적용 된다. 지난해까지 최저 시급액 4320원에서 20%가 감액된 3456원의 시급을 받았다. 이는 노동 당국이 이들의 업무 강도가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최저임금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다.

감단 사업자가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주려면 고용노동부로부터 감단 노동 사업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승인 요건이 ‘감시단속 업무 외에 다른 업무가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순찰시간 외에는 경비박스에 앉아서 감시만 한다는 조건으로 감단 사업장 승인이 떨어지지만, 이러한 조건이 지켜지는 관리사무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평상시 접하는 거의 모든 경비원은 감시업무 외에도 쓰레기 분리 및 수거, 주차대행 및 주차관리, 건물 및 단지 청소, 택배 대리 수취 등의 여러 가지 잡무에 시달리고 있다.

 

02104600012008082537_1.jpg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사각지대. 이른바 감단직 노동자인 아파트 경비원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또한 감단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부당해고의 위협과, 인격적 모멸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불안 우려 때문에 스스로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감단 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최저시급을 적용하려는 입법 움직임도 있었으나 오히려 감단 노동자들이 이에 반발했다. 임금을 인상하고 환경을 개선하려다가 비용부담으로 인한 대규모 해고사태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불안한 고용 때문에 임금 인상마저 스스로 거절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고용노동부는 몇 차례의 토론 이후인 지난해 11월 7일 최저임금 90% 감액적용을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리고 12월 21일 개정령이 발표되었다. 이로써 2012년 1월부터 2014년 말까지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은 90% 감액 적용된다.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와 세계인권선언 제42조의 내용이다. 감단 노동자를 옥죄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1948년에 발표된 선언문에 담긴 60년 전의 인권의식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감단 노동자는 대부분 고령이다. 낮과 밤이 바뀌는 근무형태는 다른 어떤 연령보다도 고령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또한 휴게와 휴일에 대한 규정의 적용 제외는 인권의 한 범주에 속하는 ‘쉴 권리’를 짓밟고 있다. 자본과 고용주 앞에서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법밖에 기댈 곳이 없다. 그들을 위한 근로기준법 현실화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