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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속에 병드는 대학 총학생회 (조재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28
조회
384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11월의 캠퍼스는 소란스럽다.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시판마다 선거 포스터가 즐비하다. 추운날씨에도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뜨겁다. 그들이 나눠준 전단에는 공약들이 빼곡하다. 곳곳에 선거운동본부의 캠프가 설치되었다. 후보자들의 목소리는 교내 방송으로 울려 퍼진다. 강의실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홍보를 계속한다. 당차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하지만 항상 새롭게 느껴진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화두는 단연 등록금 문제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제1의 공약으로 내세운다. 복지 관련 공약도 증가하였다. 이처럼 총학생회 선거를 통해 그 해의 정치를 볼 수 있다.

선거 운동은 캠퍼스에 활기를 더한다. 하지만 감춰진 이면들도 존재한다. 등록금 감액, 학생식당 개선, 휴게시설 확충... 학생 모두가 원하는 공약들을 부르짖는다. 이는 몇 년째 공약으로만 존재했다. 더욱 큰 문제는 선심성 공약의 남발이다. 한 대학 학생회 후보의 공약은 큰 논란이 되었다. 공약의 내용은 다름 아닌 성형수술비 지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네일아트숍 할인, ATM 수수료 면제 등 퍼주기 경쟁이 치열하다.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대학 선거의 공약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추진계획의 부재이다. 당선 후의 구체적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당선되면 생각해보자’는 식의 사고가 드러난다. 이는 학생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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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 학생들이 총학생회 선거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총학생회의 선거는
대학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지만 그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 또한 얽혀 있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후보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투표하는 입장인 학생들도 한 몫 한다. 학생증만 있으면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투표이다. 그러나 투표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장투표는 기본, 비상대책위는 선택’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후보자들이 투표를 구걸해야하는 판국이다. ‘찍을 후보가 없다, 기권도 하나의 의사표시다.’ 등의 변명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투표의 이유 또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공약 실천 능력에 대한 판단은 뒷전이다. 친구들의 ‘카더라 통신’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같은 단과대라는 이유로 투표하기도 한다. 학연, 지연은 역시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후보자들의 외모를 보는 이들도 있다. 마치 초등학교의 반장 선거를 보는 듯하다. 누가 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률은 저조하다. 학생들의 무관심은 여기서 비롯된다. 참여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자기 효능감’은 제로에 가깝다. 학생회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한 역량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인기영합적인 공약에 의존하게 된다. 총학생회 또한 반값등록금을 원한다. 누구보다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학교 측에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이다. 학교는 이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총학생회에 ‘힘’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매번 되풀이된다. 만약 총장을 투표로 선출한다면 어떠할까? 아마 대다수가 진지하게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 밖의 총학생회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 충격적인 글이 게시되었다. 한 사업자가 총학생회의 비리를 공개한 것이다. 영수증 조작을 당연하듯 요구하였다. 계속적 거래를 수단으로 협박까지 일삼았다.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기에 사업자들은 선택권이 없다. 이 글을 본 대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러한 자금은 우리들의 학생회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뿐이다. 다시 선거 기간이 되면 무관심은 반복된다. 이러니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리도 만무하다.

학생들만의 탓이라 볼 순 없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터이다. 총학생회의 무능함과 학생들의 무관심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무엇보다 총학생회 역할의 봉쇄에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대학 총학생회의 역할은 확대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대학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도 요구할 의사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엔 시간이 부족해졌다.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걱정해야한다.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도 필수이다. 학점 및 영어 점수 관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자연스레 대학은 사회와 분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사회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 총학생회의 파행은 사회문제와 직결된다. 등록금 폭등, 청년 실업 심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나 또한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투표에만 형식적으로 참여해왔을 뿐이다. 힘든 현재 사정을 탓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현실에 순응하며 지내왔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나가 보자. 어떤 식으로든 총학생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들을 적절히 감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소통통로를 구축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외치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작은 변화가 ‘제도와 리더십’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을 300만 대학생의 대표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대학생들이 뭉칠수록 정부는 두려워한다. 그리고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로 이를 똑똑히 확인하였다. ‘실천’을 통해 ‘현실 변화’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고립’에서 벗어난 ‘관심과 실천’이 다시 한 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