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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돌아다니기 참 힘드네요 (김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05
조회
318

김미영/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약 세 달 전 다리를 다쳤다. 순간 넘어지면서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인대가 늘어난 것은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더욱 오래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주면 나을 것 같았던 다리는 한 달이 넘고 두 달, 세 달이 넘어도 완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가 다쳤으면 집에서 가만히 쉬어야 하지만, 참 무던히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프면 쉬지 뭐 하러 밖에 나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는 내게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목적지까지 에스코트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이나 순간이동 초능력이 없는 한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어쨌든 일단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다리 한 쪽을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든 나에게 서울 곳곳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자취집 바로 앞에 있는 학교에 가는 것도 고역이다. 매일 다녔던 길이지만 아침마다 차가 많이 지나가는 줄 몰랐다. 길을 가다 내 주위로 차가 오면 잠시 긴장한다. 예전 같으면 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빨리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절뚝거리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는 차를 제 때 피할 수가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너무 일찍 빨간 불로 바뀐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나는 반도 건너지 못하다가, 내 바로 앞에서 우회전하는 차에 깜짝 놀란 적도 많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사가 심하다. 2년 전부터 학교 초입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지만, 등교하는 것은 여전히 괴롭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왔어도 수많은 계단과 비탈을 지나야 한다. 더욱이 요새는 캠퍼스 내에 공사장이 많아졌다. 공사장 때문에 길이 막혀 우회해야 하거나, 좁고 안전하지 못한 길을 택해야 한다. 평소에 학교 다닐 때에는 그저 작은 불편함이었지만, 다리를 다친 나에겐 불편함을 넘어선 공포였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더욱 문제였다. 지하철은 버스처럼 오르막, 내리막길을 지나거나 커브를 돌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하지만 너무 계단이 많다. 물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고 찾기도 힘들다. 하차한 후 엘리베이터가 내가 내린 승강장에서 불과 20m 안에 있는 경우는 행운 중의 행운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50m, 70m, 심지어 100m 이상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출구로 나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도 턱없이 부족하다.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를 나오면,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한다. 나같이 다리가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찾아도 문제다. 예를 들어, 5번 출구로 가기 원했으나 엘리베이터가 10번 출구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다시 원하는 출구까지 걸어가든지, 아니면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더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에스컬레이터의 시동이 꺼져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다리를 다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 많은 곳에서 에스컬레이터의 한 쪽만 시동을 꺼놓는 경우 내려가는 쪽을 꺼놓는다. 사람이 많은 환승구간의 계단 역시 공포의 대상이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치이기 전에 계단 가장자리로 빨리 이동해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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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들의 이동을 위해 저상버스,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 등의 제도들이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어려움도 막상 내 일로 닥쳐야 안다고 했던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야 매일 다녔던 길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길인지 알았다. 횡단보도의 너비와 신호등 시간, 엘리베이터의 수,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등등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불편을 경험하지 않는 한 몰랐을 것들이다. 이전에는 ‘저상버스’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 했다. 계단 높이만 낮을 뿐 다른 버스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불편을 겪고 나서야 저상버스가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교통약자’라는 말이 있다.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등 생활하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4분의 1이라고 한다. 교통약자들에게는 이동하는 장소마다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저상버스가 확충되고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는 등 많은 제도들이 도입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진정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2011년도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수립해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1385개인 어린이보호구역을 1505개로 확대, 노인보호구역 13개소를 지정, 보행교통 불편지점에 대한 횡단보도 총 20개소를 개선하는 등 교통약자 우선의 도로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 한다. 이런 대책이 교통약자들의 입장에서 서서 올바로 시행이 되길 바란다.

인대가 늘어나서 나는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불편을 겪고 있다. 발목보호대 정도만 하고 다니는 것도 이렇고 불편한데 그동안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들은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었을지 새삼 느낀다.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하루에 몇 번씩은 사람들에게 툭툭 치인다. 계단 하나하나, 작은 비탈 하나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이런 불편을 감수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불편하고 위험하면 나오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가혹하다. 교통약자는 누구나, 언제든, 어디에서든 될 수 있다. 교통약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라면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이 있다. 이 법의 제3조는 ‘이동권’에 대해서 말한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결국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