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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그 한 여름밤의 꿈 (김새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03
조회
337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쉽게 ‘가난’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젊은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길 뿐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넬라판타지아’ 노래가 시작됐다. 카메라는 청중들의 경이에 가득 찬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심사위원석과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국판 폴포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는 껌팔이 인생, 22살의 청춘이다.

한 개인의 세상분투기 덕분에 그의 노래에는 사연이 실렸다. 다섯 살부터 길거리 생활을 해왔다는 그는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성악공연을 보고 음악에 매료됐다. 길거리 음반가게에 앉아 홀로 음악을 배웠다. 그의 삶의 역사의 혹독함과 고난 그리고 시련을, 재능경연 오디션에서 노래로 극복한 그는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와 함께 거리에서 청춘을 보내는 가난한 껌팔이 소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주목받은 그에겐 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의 대다수 껌팔이들 중 재능오디션에 나와 승리를 거머쥐어 감동적인 인생역전 스토리를 선사할 이, 얼마나 될까. 99%는 그처럼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세대와 시대, 사회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축소돼 버린다. 개인이 속한 집단, 개인이 속한 세대와 시대,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큰 맥락을 삭제시킨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 광풍이 부는 오디션의 속성이다.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수천만 명 중에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승리를 위한 긴 경쟁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필요 없다. 실제 사회가 혈연과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경쟁의 우위를 다퉈왔던 것과 차별화하려는 오디션의 의도다. 실제 껌팔이 소년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갈고닦은 성악실력을 갖고 있었더라도 실제 성악가가 되기 위한 사회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학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능력만 봐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현실세계의 진입과는 다르다. 당신의 능력만 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의 처절한 사연을 시청률의 담보로 잡아챘다. 끔찍한 삶의 비극을 그가 부른 노래의 감동의 밑바탕으로 깔아줬다.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껌팔이의 노래였다. 그렇기에 감동을 선사한다고 방송은 떠들어댔다. 그것은 진짜 승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오디션의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일까. 이제 무대는 끝났다. 지독한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 그의 행로가 이의 답을 마련해줄 터이다.


최성봉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최성봉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다만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껌팔이 소년의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을지도 모를 무대가 일회성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의 승리는 오디션 무대 진행 중에서만 빛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디션이 끝나면 그의 노래도 끝이 난다. 오디션이 사회와 절연된 처절한 개인의 사연만을 무대에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디션에 울려 퍼진 감동의 노래는 그저 꿈이었을 뿐, 현실세계에서 그는 앞으로도 줄곧 껌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와 유리된 오디션 무대는 공정사회가 구현되지 못한 이 세계에 달콤한 유혹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디션이 끝난 뒤에 현실사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디션은 그저 환상과 꿈의 세계일 뿐 결코 현실의 세계마저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약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 한 켠에서는 청춘의 문제가 시대와 세대, 그리고 사회의 문제임을 외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연이어 청춘 개인의 승리자인 백청강과 껌팔이 소년이 뜨고 뉴스와 신문이 소리 높여 이를 보도한다. 그러나 수일간 계속되는 대학생들의 외침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학생이 거리로 나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다. 청년실업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학교 청소부 아주머니의 최저임금 보상을 위해 지지하는 손길도 있다. 대학생들의 이런 외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춘의 시련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손을 맞잡고 연대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청춘의 가난과 시련 또한 개인의 극복만으로 가능하다는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청춘은 오디션이 아니다. 청춘은 단 한 번의 승리와 무한경쟁의 게임이 아니다. 청춘은 진짜 삶이다. 청춘은 모두가 함께 숨 쉬고 먹고 뛰는, 살아있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