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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사건, 우리는 ‘침묵의 공범’ (조재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58
조회
376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 붐볐다. 버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리기가 무섭게 약속장소로 뛰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북적인다. 사람들을 헤치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순간 한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일행으로 보이는 두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에게 이 남자를 잠시만 붙잡고 있어 달라고 했다. 곧 경찰이 올 거라고도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북적이는 거리를 여자들 일행이 걷고 있었다. 그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일행 중 한 여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의 치마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남자의 휴대폰 카메라였다. 남자는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괜히 나에게도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경찰이 도착 할 때까지 도움을 줬다. 그러나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여자가 나를 붙잡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저 무수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면, 나서서 도움을 줬을까? 아마 나 또한 ‘간접적 방조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간접적 방조범’은 성 추행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 범죄 발생에 일조한다. 이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비단 ‘간접적 방조범’뿐만이 아니다. 범행 현장에 없었어도 ‘침묵의 공범’은 될 수 있다. ‘침묵’이라는 부작위도 사회의식을 형성한다. 범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침묵의 공범’이 된다. 얼마 전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도 다양한 ‘침묵의 공범’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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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고려대 정문 앞에서 한 졸업생이 고대 의대생 성추행자들을 출교조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성추행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대학생들은 MT를 떠났다. 그곳에서 집단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반 성추행 사건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사람의 몸을 치료할 예비 의사들이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수재들이기도 하다. 또한, 피해자는 바로 같은 학교 학생이다. 그들은 6년간 같이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한 동기였다. 단순한 성추행에 그치지 않았다. 성추행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이다.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 학생들 중 한명은 대학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피해 학생에게도 잘못이 있다 한다. 그래서 사과할 수 없다고 한다. 해당 대학은 미온적 대처로 일관한다. 심지어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쳤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피해자는 다시 한 번 정신적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이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누구일까? 해당 의대생들이 재학 중인 대학교가 그러하다. 출교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은 거세져 갔다. 그러나 아직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조차 내리지 않았다. 마치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학의 정문 앞에서는 릴레이 시위가 벌어졌다. 웹상에서는 인권위 제소 페이스북 모임이 만들어졌다. 성추행 의대생들을 규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학생들이 아니다. 트위터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재학생들 또한 대학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침묵의 공범’에 해당한다. ‘침묵의 공범’은 ‘간접적 방조범’과는 다르다. 이들은 피해가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대학은 이미지 실추를 걱정할 것이다. 재학생들에게는 울타리 의식이 작용한다. 가해자가 내 선배이거나 후배 혹은 동기이다. 이 때문에 감싸주고 있는 것이다.

사건은 대학생들의 성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의식을 되돌아보자. 개개인의 스펙은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이에 비해 성의식은 미성숙한 것이 사실이다. 성의 개방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 야기되는 성의 문란이 문제이다. 대학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한 책임에 의해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비판을 가해 마땅하다. 그러나 타 대학의 학생들조차 생각보다 조용하다. 사건 내용은 같은 대학생으로서 분개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방관적인 태도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침묵의 공범’인 셈이다.

하루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를 모르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물론 비판을 가하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도 ‘침묵이 공범’이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달라져보자. ‘성추행’은 어느 중범죄보다도 가볍다 할 수 없다. 특히나 대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대학과 재학생들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미지도, 울타리의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 바로 올바른 성가치관과 피해자의 인권이다. 다른 대학생들도 ‘침묵의 공범’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당한 비판과 실천적 행동은 많은 작용을 한다. 자신의 의식을 성숙시킬 수 있다. 또한 사회의 의식을 바르게 변화시킨다. 이제 능력뿐만 아니라 성 의식도 압축 성장시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