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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의 50년만의 변신, 로스쿨 (조재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41
조회
625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태양은 뜨거웠다. 일병 계급장을 막 달았다. 행정반 사무실에 앉았어도 사병의 여름은 더웠다.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는 뉴스가 실렸다. 법대를 다니던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로스쿨이 도입된다고 했다.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입학의 어려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보초를 서면서도, 행군을 하면서도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마음껏 놀았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스펙 관리를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많은 법대 학생들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사법시험 폐지 년도는 목전으로 다가왔다. 고시반이 위치한 인문사회관 4층은 황량하다. 신규 수험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장 수험생들만이 텅 빈 고시반을 지키고 있다. 법대 자체는 존치 논쟁에 휩싸였다. 학교에서는 고시반을 대체할 로스쿨 준비반을 계획하였다. 일종의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저물어져가는 고시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로스쿨의 입학 요건과 관련이 있다. 로스쿨 입학을 위해서는 학점, 공인 영어점수, 법학적성시험(LEET) 점수가 필요하다. 즉, 취업시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고, 영어 학원을 다니면 그만이다. 법학적성시험도 이름만 그러할 뿐이다. 실질적인 평가요소는 속독과 추리, 그리고 작문 능력이다. 굳이 준비반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사법시험은 50년 가까이 법조인 선발을 담당해왔다. 그간 훌륭한 법조인들도 많이 배출시켰다. 그러나 심각한 사회적 병폐 또한 야기하였다. 법조계는 배타적 독점으로 점점 더 폐쇄화되었다. 한때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사법시험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합격하기 힘들다. 수험서와 강의, 심지어 공부법까지 정형화되어 버렸다. 이를 갖추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월 평균 12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한다. 합격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즉, 합격을 위해선 가정 형편상의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3명 중 1명은 강남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사법시험을 통해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부는 로스쿨 도입이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폐쇄적인 법조계의 개방이다.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입학하진 못하였다. 로스쿨 측의 평가기준을 충족하였다 해도 입학을 보장할 수 없다. 명문대 졸업이란 묵시적 요건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다.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평균 1,500만원이다. 이는 웬만한 ‘중산층’에게도 부담되는 금액이다. 등록금이 입학의 실질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로스쿨이 오히려 법조계의 폐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는 특권층의 재생산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사법시험의 사회적 문제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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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6일, 3000여명의 로스쿨 재학생들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50%로 제한하자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주장에 반발하여 단체로 자퇴서를 제출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도입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로스쿨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물론, 로스쿨의 긍정적 측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들은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예견한다.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다. 법조종사자 중 79%가 로스쿨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 중 42%는 사회계층의 단절을 우려한다. 제도 자체가 상위계층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혈연, 지연, 학연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로스쿨의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명과 관련성이 크다.

‘한국형 로스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초기이니만큼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변화 과정에서 사법시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법조계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아니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이었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한다. 자칫하면 ‘사다리 걷어차기’식 제도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