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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는 거름으로 ‘성공’이라는 꽃을 (김종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29
조회
286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추석연휴에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선배를 만났다. 명절 때면 꼬박꼬박 부산에 있는 집을 찾던 선배였다. 귀향이 왜 이리 늦었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번 추석엔 집에 안 내려갈 거야.”

선배는 23살부터 7년 동안 행정고시에 매달렸다. 1차에는 여러 번 합격했지만, 아직 2차 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선배는 나이만 잔뜩 먹은 채로 아직도 대학에 남아있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래서 차마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오늘 도서관에 나와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나랑 처지가 비슷할 거다.” 선배가 내뿜은 담배연기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미안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매년 3대 고시라 불리는 사법·행정·외무고시를 합쳐 3000명 정도가 합격의 영예를 누린다. 이 3000명 안에 들기 위해 7만 명(2011년 5월, 통계청)의 젊은이들이 시험문제 하나하나에 사투를 벌인다. 1명이 성공하면 22명이 낙오하는 싸움. 그러나 떨어져도 재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서, 고시생 숫자는 줄어들 줄 모른다.

왜 이렇게 많은 청춘들이 가능성 낮은 싸움에 뛰어들까. 고시생 생활을 해 본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대부분이 말한 답은 ‘인생역전.’ 로또 복권의 광고 문구와 같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빈곤의 사슬을 단박에 끊고 상위 계층으로 편입할 수 있는 방법은 ‘고시패스’뿐이라는 것이다. 계층 상승의 통로가 막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 빵빵한 부모를 두지 못한 청춘이 노릴 수 있는 인생의 반전은 ‘로또’와 ‘고시’ 뿐이다. 그나마 고시생들은 요행이 아닌 노력으로 반전을 꿈꾸는 순수한 영혼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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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고시학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의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점점 이루기 어려워진다. 몇 년 동안 사법고시를 하다 포기하고 최근 취업시장에 뛰어든 선배가 말했다. “고시도 돈으로 하는 거더라. 돈 많은 집 애들, 부모가 법조인인 집 애들은 쾌적한 원룸에 살면서 일 년에 천만 원 하는 과외 받고 합격 하던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선배는 학비와 생활비를 대느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선배는 “서른 가까이 될 동안 스펙 쌓아놓은 것도 없으니, 이력서에 내세울 게 없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취업 경쟁에 뛰어들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1조.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능력’은 결코 부모의 재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제적 능력이 진실한 노력을 압도하고 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이 아니다. ‘노력’이라는 거름으로 ‘성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사회에서 청춘을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