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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느긋한 청춘이 되고 싶다 (김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46
조회
403

김한빛/ 객원 칼럼니스트



학교 후배 형범이는 편의점에서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형범이가 시급으로 받는 돈은 4000원이다. 법에서 규정한 시간당 최저임금인 4320원보다 낮다. 그런데도 형범이는 다른 편의점에 비해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만족해한다. 사실 형범이가 말한 대로 시급 4000원은 다른 편의점보다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경우 80% 이상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비단 편의점만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편의점이나 마트와 같은 체인점의 경우엔 최저임금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근접한 시급을 받는다. 하지만 피시방·주점 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사업장에선 4000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학교 근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의 경우, 시급 3500원을 받고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있다. 8개월을 일하는 동안 보너스 지급이나 임금 인상은커녕 야간 수당도 생각할 수 없었다.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겨울방학에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른 후배의 경우 저녁 8시부터 업무 종료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마감시간까지 일했다. 월급은 시간과 관계없이 고정된 80만원. 최저임금 4320원으로 계산하면 휴일 수당과 야간 수당을 제외한다 해도 1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야 하지만 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몰라서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후배들은 법학을 전공하고 있고 노동법도 잘 알고 있다. 다른 어떤 아르바이트생보다 최저임금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을 알고 있다 하여도 낮은 임금을 이유로 업주에게 항의하면 바로 해고당하기 쉽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면 업주는 고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한 후배의 경우 편의점에서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다가 채용이 거부된 적이 있다. 그 후로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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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 노조’라는 이름을 걸고 지난해 3월에 출범한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해 4월 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정부에 청년실업 해결과 노동조합 설립 허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강력한 관리 감독도 필요하겠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더 요구된다. 고용주와 동등한 입장에 있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 혼자의 힘으론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혼자의 힘이 아닌 단체나 노조를 통해 고용주에게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세대별 노조를 표방하는 청년유니온이 탄생하였다. 청년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별 노조나 산별 노조를 초월한 ‘세대별’ 노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는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또한 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은 등록금이나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에 임금을 받게 되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를 보전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노동부에 최저임금 위반 신고를 하면, 받지 못한 임금을 노동부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업주로부터 받아내는 방식이다. 몇몇 사람들은 예산 문제를 이유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겠지만, 4대강 사업 예산의 일부분만 삭감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부 말고 학교 차원의 노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학교와 주변 상인 간에 협약을 맺어 업주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학교는 성실한 학생들을 상인들에게 소개시켜주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은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상인들은 안심하고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다. 또 협약에 가입한 업소들에게 최저임금 준수 업소 스티커를 부착하게 한다면 가게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만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40년 전 과거형이 아니라 2011년 현재형이다. 이러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노동의 시계를 전태일 열사가 생존해있던 1960년대로 되돌리는 일이다. 더구나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열악한 아르바이트 환경에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젊은 서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