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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나는 고스트라이터였습니다. (김은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44
조회
391

김은성/ 청년 칼럼니스트



세상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럴 듯한 명함을 가져야 한다거나 모든 이가 창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따위가 아니다. 99번 만에 입사한 회사가 하필이면 대출업체라 아침마다 미입금자 명단을 뒤져 협박 전화를 걸어야 한대도, 여배우의 노출 부분에 정교한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며 매일 7개씩의 ‘정크 기사’를 생산하는 인터넷 기자라 해도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생각하기만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아직 제 이름을 잃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한 가닥 회의를 끝까지 부여잡고 살아간다면, 그 망설임이 자신의 이름표가 돼 주는 게 아닐까. 그러니, 싫은 것을 싫다고 투덜거리고, 옳지 않은 일에 항의하고, 부끄러운 일 앞에서 주저하는 것이 이 이상한 나라에서 ‘닥치고 복종’을 끝내 이겨내는 힘이라 여긴다. “아니오, 네가 틀렸거든요, 그거 정말 이상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진 못해도 결코, 끝까지 입을 닫지는 말기.

그런데 한 번도 각오한 적 없었던, ‘불의와의 타협’에 얼마 전 나는 서명했다. “앞으로 이 책은 오랫동안 너의 거짓말이 될 거야.”라고 쓰인 종이에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적어 넣은 셈. 그리고 영원히 비밀 엄수하고 입 닥치겠다는 무언의 약속. 사정은 이러했다. ‘내일이 마감인데 한글2007창은 새하얗게 비어있는 악몽’을 이틀 걸러 꿀 정도로 두 달간 심신을 괴롭혔던 실용서 원고가 겨우 마무리됐다. 오리털 파카를 벗을 때쯤이면 떠나실 줄 알았는데 벚꽃이 휘날려도 절대 안 가시더라. 당연히 몇 안 되는 인간관계도 잠시 끊겼고, 녹초가 돼 귀가하는 날이면 현관문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그랬던 애증의 책이 이제야 디자인을 마쳤는데 최종 PDF에 박힌 건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이름이 아닌가! 서울대 학부와 동대학원 졸업, 몇 권의 실용서 집필이라는 이력과 함께. 득달같이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불같이 화를 내지는 못하고 ... 쌩초보 작가답게 조용히 메일을 송고했다.


이미지 검색결과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대필로 결정됐나 보네요. 미리 말씀 좀 주시지.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분 이름 밑에 ‘교정교열 OOO’ 이라고 들어간 제 이름은 빼 주세요. 불쾌합니다. 제 존재 자체를 책에서 지웠으면 하네요.”

‘불쾌합니다’를 지웠다 넣었다 하다가 결국 ‘기분이 썩 좋지 않네요’ 정도로 고쳤다. 당장에 장문의 답신이 왔다. 현 출판시장의 비극적 상황과(2011년 문을 닫은 대형 서점 4개를 차례로 나열), 소규모 1인 출판사 대표로 살아가는 고충 (일이 어려워 결혼도 못했다. 출판사 문을 닫는 악몽을 매일 꾼다. 3포 세대가 바로 나다), 원래 쓴 작가의 프로필로 가려 했으나 주위에서 재고 만들 일 있냐며 만류하더라 (학습실용서는 99%가 서울대학교 출신 프로필을 달고 있다. 대리 프로필을 사 오느라 큰 위험도 감수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양해해 달라.)등의 내용과 그 사정 사이에 서리서리 배인 절절함. 조선시대에 신문고 앞에서 백성들의 억울함을 대필하는 일을 하셨으면 큰 돈 버셨겠다 싶을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 결국 나는 답문자까지 공손히 보냈다. “네. 이해해요. 힘내셔요.”

‘문도리코’가 따로 있나. ‘문대썽’은 누가 만들어줬나. 실용서와 자서전, 정치인 연설문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자기소개서까지 남이 대신 써 주는, 대한민국 대필무한써클에 발을 담근 이상 이 몸도 죄인이다. 이 세계의 룰은 들어올 때고 나갈 때고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니, 어디 말할 데도 없고 이렇게 염치없이 칼럼란을 빌려 투덜댄다.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딱히 누구를 욕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내 욕밖에 할 것 없어서 대나무 숲 속에 서서 망연자실한 이발사의 심정이랄까. 60일의 밤을 카페인과 레드불로 지새우며, 그래도 최선 다하자며 해맑게 주먹 불끈 쥐었던 때의 내 표정은 나이브한 열정으로 부끄럽게 기억될 것이고 방금 낳은 아들 뺏긴 그 옛날 씨받이 처녀들 심정의 10분의 1정도는 공감할 것도 같다. 시간이 흘러 앙금도 좀 사라지면, 서점에서 마주친 이 책을 제목 안 보이게 뒤집어 꽂거나 인문학 서적 섹션에 꽂아 둘 정도의 소심한 복수나 하겠지만. 아무튼 이 너덜너덜한 기분은 못 마시는 소주를 들이부어도 무섭게 생생하더라.

대필작가로 경제적 안정을 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동료들이 많다. 대기업 CEO나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신 써 주면 작은 방 월세 보증금 정도가 나오는 경우도 있단다. 한 대선 후보의 자서전을 써 준 작가는 1년 동안 ‘개고생’을 한 후에 (보통은 두 달이면 쓴다)받은 돈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하며 산다. ‘어차피 모두가 대리인생이다. 혼을 바쳐 일하나, 대충 일하나 어차피 한몫 챙기는 건 자본 가진 놈이고 부스러기 주워먹는 건 딴 놈들이다.’ 시니컬하게 주억거리며 이름 따위 없이 살아가도 좋으련만, 타인을 대신하여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타인의 이름이 적힌 몇 권의 책을 출판하는 동안 타인의 성공한 인생 속에서 헤매게 될 것만 같아 두렵다. 진짜 유령이 되어 외로워질 것 같아 겁난다. 부끄러움을 무마하려 여행과 좋은 물건 등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사람은 영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다음 번에는 고료 2배로 올려드릴게요. 꼭 다시 작업해요.’란 문자 앞에서 서성대는 이 초라한 마음.

숙취와 함께 기상한 아침, 김순자 후보가 비례대표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순자 이름 세 글자 위에 올라붙은 탈락이란 두 글자. 그런데 내공 깊은 순자 언니는 ‘어머, 나 탈락!’ 정도의 아침 트윗으로 ‘탈락’ 두 글자 따위 빗자루로 쓱 쓸어 버리셨다.

“지금 출근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부둥켜 안고 커피도 마시고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합니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청소 노동자 맞지요?(@kimsunja0411)”

아, 이토록 유쾌하고 당당한 실패자의 이름이라니! 가볍고 단순하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나는 당장에 기운내고 또 다시 새 한글창을 열었다. 아니, 선거 다음날 신새벽에 출근하시는 분 앞에서 어디 초보인생이 소주병 들고 궁상 떨고 난리니. 성공한 타인의 이야기를 대신 쓰며 밥벌이 하지 말고 좀 덜 먹고 덜 입더라도 내 것 써야지, 이를 앙다물었다. 가짜 성공은 안 부러운데 멋진 실패는 정말 부러우니까. 저 정도 내공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로 속 쓰려보셨을까 싶어, 나는 좀 더 여러 번의 실패를 하기로 했다. 확실한 내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