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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의 사랑학 (김새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39
조회
370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사랑에 무슨 자격이 있겠냐마는 삼포세대인 현 청년들에겐 예외가 있는 법인가보다. 최근 몇 주간 한 사랑의 고백이 내내 가슴을 쳤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백진희가 윤계상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짝사랑 때문은 아니다. 곧 떠나갈 연정의 대상의 행보 때문만은 아니다. 거절당한 씁쓸한 사랑의 뒷모습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청년 백수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백수의 사랑에 대한 짧은 고찰이다.

하이킥 3의 백진희는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청춘들의 가슴 아린 친구다. 반년 만에 가게 된 고기집에서 자신의 학교 생활은 온통 알바했던 기억뿐이라며 울먹이다가도 그 와중에 고기 몇 점을 입안에 우겨넣는 친구, 토익 900에 각종 자격증만 서너 개임에도 서류만 200번 면접만 50번 떨어졌다는 친구, 첫 보건소 인턴 월급을 감사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보다 학자금대출 및 이자를 갚는 데 써야하는 친구, 고시원에 쫓겨나 하선네에 얹혀살면서 하이브리드급 절약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친구다. 그런 백진희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삶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사랑은 온다. 허나 그 사랑, 참으로 서글프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이 서글프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로부터 오랫동안 거절당해왔던 백수로서의 경험은 그녀가 누군가와 관계 맺는 방식조차 바꿔버린다. 학교를 졸업한 뒤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 나선다. 사회에서 지위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손을 청한다. 백수는 그 청을 여러 번 거절당한다. 200번의 서류에서, 50번의 면접에서 거절당한다. 그 실패와 좌절, 위축과 소외감은 사람을 바꿔버린다. 이것은 개인이 나약하여 극복하지 못한 개인의 실패담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먼저 취직한 친구들과의 모임자리에서, 잘 나가는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나보다 앞서나가는 후배들의 소식에서, 내 삶의 새 시작의 요원함이 너무도 아득해질 때, 거대한 사회에서 나 하나 몸 둘 곳 없는 사회의 황량함에 누구든 처량해지기 마련이다.

 

하이킥 백진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88만원 세대 백수 백진희
사진 출처 - 뉴시스


 

백진희도 그랬다. 갈 곳 없어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먹고싶은 저녁메뉴 하나 말하지 못했고, 집주인과 싸우고 나서도 갈 곳 없어 옷수거함 옆에 밤새 쪼그리고 앉아있으며 자신의 현실을 감당해내지도 못할 자신의 화에 대해서만 분을 삭일 뿐인 그녀였다. 긴 백수생활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학자금 대출의 빚뿐 아니라 주눅든 성격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백진희의 사랑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대체 왜, 시작도 하기 전에 감정을 키운 자신을 탓하고, 지금 아픈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도 않은 채 거절한 연정의 대상에게 부담을 덜기 위해 자신의 감정은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듭 변명해야만 했을까. 대체 왜, 거절하느냐고 화조차 못 냈던 것일까. 르완다로 떠나는 당신을 왜 붙잡지 못했을까. 아니, 붙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까. 단지 백진희란 개인의 사랑법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긴 백수생활 동안 그녀가 사회로부터 받아왔던 거절의 역사가 사랑에 있어서도 그토록 그녀를 두렵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가슴 아팠다. 시작할 때부터 거절을 두려워한 그녀가 참 아팠다.

백수도 사랑을 한다. 삶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사랑은 온다. 백진희의 사랑을 응원하는 까닭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백진희 그녀가 취업만큼이나 사랑에도 최선을 다하는 당당한 모습을 TV에서 계속 보고싶다는 점이다. 지금 그녀와 같은 처지의 우리가 현실을 살아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거절당할 때 우리도 거절당했고 그녀가 울 때 우리도 운다. 그녀가 웃을 때 우리도 웃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을 때 우리의 손도 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도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다만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갈 시간을 더 버는 일이 아닐까.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더 깊어질 사랑의 충만감을 기대할 일이고, 더 높이 비상할 미래의 자신을 꿈꾸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백수들의 도전과 백진희의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