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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평화는 당신의 평화다! (정다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46
조회
295

정다운/ 청년 칼럼니스트



“우와! 이겼다!” “설마, 만우절 장난은 아니겠지?”

4월 1일 일요일, 가족과 저녁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텔레비전의 낯선 케이블 채널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는 한 여인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날, 4월 1일에 실시된 버마의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압승이 예상된다는 짤막한 보도였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머리 속 퓨즈가 살짝 끊어졌다 이어진 듯, 아찔하게 설레었다. 볼 한쪽으로 씹던 밥을 밀어 넣고 식구들에게 떠들어 댔다. 내가 저 일을 도왔다고. 버마 대사관 앞에서 확성기를 잡았다고. 지난 1년간 열두 번, 비가오나 눈이오나 “프리버마”를 외쳤다고. 그런데 정말 ‘그날’이 왔다고!

그러나 한껏 들뜬 나와는 달리, 식탁은 고요했다. 벌써 밥 한 그릇을 뚝딱 하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게 너랑 뭔 상관이냐…… 얼른 밥이나 삼켜”

흥분과 설렘이 ‘일시 정지’됨과 동시에, 밀어놓은 밥 덩어리가 꼴깍 넘어갔다. 정말이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대한민국에 사는 스물네 살의 대학생 ‘나’와 ‘버마의 민주화’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예상치 못하게 한방 맞고 나서야, 의문이 생겼다. 그제서야 진지한 답변이 절실해졌다. 사실, 아주 진작에 고민했어야 했던 것인데 말이다. 길게는 3년째, NLD한국지부를 도와 그 시위에 함께한 인권연대와 국제민주연대 식구들은 무엇을 바라고 그늘도 바람막이도 하나 없는 그 대사관 앞에서 ‘프리버마’를 외쳐온 것인지 말이다.

프리버마 캠페인은 말 그대로, 버마의 자유를 위한 운동이다. 1948년,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자 마자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지금까지 그 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자유란 즉 민주화를 의미한다. 군부는 정권유지를 위해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여사는 20년 가까이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갖가지 명목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심지어 강제 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여행과 통신, 언론 등은 모두 군부에 의해 통제된다. 버마의 천연자원은 군부 정권의 유지를 위해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다.

단편적인 사실만 들여다 보아도, 버마가 오랜 군부독재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돌이켜 보자면, 처음에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버마의 평화는 아시아의 평화다”라는 피켓을 들고 그 대사관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여느 집회참여자들처럼 비장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다. 단편적인 버마의 실정을 알뿐이었지, 더 깊은 관점이나 심오한 동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NGO의 인턴이 되고 처음 맡겨진 임무였기에 기꺼이 서있었을 뿐이었다. 한동안은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서도 앞에 서있는 전경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스스로에게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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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궐선거는 아웅산 수치의 첫 국회 입성 기회로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버마 정부가 개혁을 통해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평가받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왜 매번 이곳에 비장한 척 서있는가. 국내 이슈도 다룰 것이 많고 복잡한데, 왜 버마의 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왠지 여기 서 있는 것이 싫지는 않다. 뭔가 공감이 되고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금새 1시간으로 정해진 시위 시간이 끝났다. 캠페인을 마치고는 늘 NLD한국지부 회원들, 인권연대 식구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 가서 진한 북엇국을 먹었다. 맛있게 밥을 먹다 보면, 그 한 시간 동안의 얕은 번뇌마저 ‘어쨌든, 나는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으로 잊혀지곤 했다.

반값 등록금 시위가 한창이던 가을 즈음에도 역시 북엇국을 먹고 있었다. 한술 두술 북엇국을 뜨며 식탁위로 두런두런 이야기기가 오가고, 역시나 그 가벼운 번뇌마저 잊혀지던 중이었다. 그때,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님께서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로 몇 마디 하셨다.

“그냥 피켓만 들고 걸었는데, 무기라곤 솜털 보송한 맨주먹 밖에 없는 학생일 뿐인데, 물대포를 왜 쏘니? 그것도 초겨울 날씨에! 추워 죽겠는데? 이건 좀 아니잖아!” “한겨울에 쫓아내면 갈데 없다고, 좀 더 살게 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왜 때리니? 아프잖아. 왜 무시무시한 덩치들을 데려다 놓고 위협하니? 무섭잖아!”

그래, 바로 이거다. 왜 복잡하게 생각했을까? 아주 단순한 것인데……

“이건 좀 아니잖아!”에서 오는 당연한 분노, 억울함, 서운함. 그리고 비단 타인에게만 닥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놔두면 언젠가는 우리 그리고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다소 이기적일 수도 있는 생각. 내가 사안을 잘 알지 못해도 어딘지 모르게 공감할 수 있었던 그 정서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무엇을 건드리는 그 ‘좀 아닌’ 사건들은 우리모두가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이다.

따라서 이해 관계없는 타자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 그리고 나의 문제로 안아 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해질 수 있다. ‘이건 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곧 당신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이라고 생각한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화가 나고 서운하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힘을 보태고 연대하면 된다.

“내 알 바 아니야”라고 말하기에 우리는, 인간은 너무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기쁨을 나누는 것 보다는 슬픔과 고통을 먼저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그 슬픔이나 고통이 꼭 ‘너’만의 문제로 끝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타인의 문제가 어느 순간 나비효과를 일으켜 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버마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다”라는 프리버마 캠페인의 표어가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아마도 나와 상관없는,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란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더 나은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꿈꾼다면 말이다.

마지막 프리버마 캠페인을 앞두고서야 제대로 와 닿았다. 버마에는 가본적도 없는 내가 프리버마를 외치는 것이, 그들의 승리 소식에 밥 먹다가 만세를 부를 만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왜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 너의 평화는 우리의 평화이고, 곧 나에게도 평화이다. 바로 당신의 평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