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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발전을 위해 당신의 학과는 삭제됩니다 (김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1:26
조회
389

김미영/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27일, 동국대학교 본관 앞. 대낮부터 때 아닌 시체놀이가 펼쳐졌다. 몇몇 학생들이 목에 큰 칼을 차고 앞으로 나섰다. 칼을 쥔 망나니가 그들의 목을 쳤다. 학생들은 칼을 찬 채로 바닥에 쓰러진다. 곁에 있던 친구들도 쓰러진 동료 옆에 나란히 누웠다. 한 편의 처형식이 연출됐다.

이 날 학생들이 보여준 것은 곧 문을 닫게 될 동국대 기초 학문 분야의 현실이다. 최근 학교당국은 기초 학문분야를 대폭 구조조정 하는 학문 구조 개편안을 마련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학과는 살아남고, 또 다른 어떤 학과는 문을 닫게 된다.
교육부 지원을 얻기 위한 구조조정

동국대는 지난 4월 학술부총장 산하에 학문구조개편위원회를 만들었다. 모두 11개의 학과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고, 3개월 뒤 해당 학과에 공문으로 통지했다. 하지만 해당 학과 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구조조정이라며 반발했다. 재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문구조개편위원회의 회의록도 공개해 현재 진행 상황을 소상히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학교 당국과 학생들은 팽팽한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사실 동국대의 학문구조개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는 독어독문학과, 윤리문화학과, 철학과를 철학·윤리·문화학부로 통합했다. 또한 북한학과의 정원을 20명 감축한 것을 비롯해 12개의 학과를 대상으로 총 110명의 정원을 감축했다. 결국 독어독문학과는 2009년 사실상 폐과됐고, 가장 많은 정원이 줄어든 북한학과는 현재 학문구조개편안에서 폐과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같은 동국대의 학부 구조조정은 교육부의 대학 구조 개혁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다.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학과 인원을 감축하는 이유는 교육부의 '구조 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 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중인 학문구조개편안 역시 2011년도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과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 사업' 의 영향을 받았다. 교육부는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율 구조조정을 하는 학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학교는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섭과 융합은 고식지계일 뿐

개편안에 대해 학교 측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맞춰 학문과 교육의 틀을 개혁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미래 사회흐름 및 요구에 부합하는 학문구조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학교가 내세우는 논리는 ‘학문간·학제간 융합’ 추세이다. 기존 학문 간에 활발한 교류와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들을 양성해 나간다는 의미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의 융합연구를 통해 지식서비스 기술을 높이거나 복잡하게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학문의 흐름에 맞춰 대학 역시 학문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학문구조개편위원회는 학부 전공교육과정 중 중복되거나 분류체계상 지나치게 세부적인 학문은 통폐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 정치외교학과와 북한학과, 윤리문화학과 등이 학문구조 개편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학제간 융합, 통섭을 논하려면 먼저 각 학문분야가 세부적으로 깊이 뿌리내려야 하지 않을까? 통섭학은 각 학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져왔고, 세부 학문에까지 두터운 전문가 층이 있어야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게다가 통섭학이 처음 대두된 미국과 달리 우리 대학의 역사는 짧다. 더욱이 각 학과 내에서도 전문분야가 다양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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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매번 달라지는 학문구조개편 방침

또한, 학교의 학부 구조조정 방침은 명분만 경쟁력 강화일 뿐 계속 오락가락했다. 1996년부터 학부제 모집을 하다가 2000년 폐지했고, 다시 2002년 학부제 모집을 부활시켰다가 2004년에는 학과제로 다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도 미래를 위한 현재 학문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것이 학과구조조정의 근거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바뀌는 학제 개편과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문예창작학과는 1996년 국어국문학과가 학부제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에서 신설되었다. 그 후 1999년 문과대학 문예창작학과로 분리되었다가, 2001년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로 독립하였다. 학교 측이 밝혔듯, 문예창작학과가 독립된 이유는 국가의 입학생 광역모집조치에 따라 문과대학의 신입생 모집 때 문예창작 특기생 선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학문구조를 개편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

통섭과 융합이라는 근거로 폐과될 북한학과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는 "학문분류체계상 북한학은 정치/행정의 세부 분야 중 하나로 현재의 입학정원으로는 독립적인 학과운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학부의 경우 연계전공으로 전환하고, 대학원에 개설하여 전문성 있게 운영할 것이라 한다. 앞서 말했듯, 북한학과는 학교의 꾸준한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2007년 20명, 2010년 2명씩 정원이 감축된 경우다. 윤리문화학과 역시 현재 입학정원으로는 독립적인 학과운영이 불가능한 실정이므로 학과 내에서 자율적으로 타 학문과 융합을 모색한다고 한다.

북한학과와 윤리문화학과의 경우 2007년부터 꾸준히 정원이 감축되어 왔다. 매년 근거만 달라질 뿐 정원 감축을 통해 통폐합의 수순을 밝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학과 학생들이 자신의 학과와 학문 선택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 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나름의 꿈과 비전을 갖고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 학문구조 개편을 통해서 학교가 발전한다면, 입결과 취업률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취업만을 평가기준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학문과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개편인가

학교는 학문구조 개편이 대학의 미래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나면, 미래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면 학교는 발전할 것이고, 학교가 발전하면 학생들의 취업은 쉬워질 것이라 말한다.

지난 9월 5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부 재정 지원 제한 대학 평가 결과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항목 중 취업률은 매우 중요한 평가 수단이기 때문에, 순수예술에 꿈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육성하는 추계예대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마다 유수 기관에서 대학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한다. 대학은 이러한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 평가가 긍정적이라면 대서특필하여 외부에 알린다. 대학과 교육, 그리고 학문이 모두 '평가'와 그 '순위'라는 도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평가와 순위 나열 작업은 각 대학의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없다.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실질적 대상은 학생들이다. 끊임없는 학문구조조정과 대학평가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학생들은 어디에서도 교육의 주체로서 있을 수가 없다. 문예창작학, 북한학, 윤리문화학을 선택하여 대학에 입학한 꿈은 저마다 다르다. 그 꿈을 더 폭넓게 꿀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대학이다.

학문구조조정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해당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최우선순위가 되었어야 했다. 같은 학문을 할 동기와 후배들이 떠나가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학과가 사라진다면, 이런 불이익과 선택권 침해 역시 학교 발전을 통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