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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내일도 없는 청춘의 오늘 (김종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48
조회
426

김종천/ 객원 칼럼니스트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쓰신 옥중 서간집「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구절이다. 암울한 현재를 살아가며 자유의 날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이보다 잘 표현한 글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입시 스트레스에 찌들어있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이 구절을 되뇌며 해방의 수능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넉 달을 궁극의 자유 속에서 보냈다. ‘내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왔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통기타 치며 노래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을 논하는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에는 더 이상 그런 풍경이 남아있지 않았다. 캠퍼스를 누비며 청춘의 낭만을 불태워야할 대학생들은 반 평도 안 되는 도서관 책상에 앉아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기다릴 내일이라도 있지만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겐 기다릴 내일이 없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과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서관에 앉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학기당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꼬박꼬박 마련할 수 있는 가정은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4500원 하는 시급으로 한 학기에 약 450만 원 가량 하는 등록금을 내려면 1000시간을 일해야 한다. 학기 중에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 돈을 대려면 하루에 10시간을 일해도 부족하다. 게다가 방값과 생활비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학생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은 독서와 여행을 하며 보내야할 방학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내고 있다.

학자금 대출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은 복리로 이자가 붙는 이 돈에 미래를 저당 잡힌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학자금 대출액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이 2만5366명이다. 불과 3년 사이에 7배(2007년 말 3785명)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은 20대 중반에 이미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안고 사회로 나서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한 선배는 휴학을 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복학을 했다가 학비와 생활비로 번 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휴학을 하고 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또 다른 선배는 과외만 4개를 하고 있는데, '대학에 배우려고 들어온 건지 가르치려고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고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떤 선배는 “한 번에 목돈 벌어서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니겠다.”며 원양어선 승선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비싼 등록금과 심각한 청년실업은 대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 10년 동안 자취방에 연탄불을 피우거나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이 2300명에 이른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꽃다운 청춘의 생명이 스러져가는데도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분들은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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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무기력해졌다.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더 많이 일해서 등록금을 채우려고만 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면 등록금 문제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스펙 열심히 쌓아서 취업 잘 하면 청년실업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열망은 촛불과 함께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내일을 희망의 날로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다. 3월에 등록금 동결을 내걸고 학교를 상대로 잠깐 싸우던 ‘개나리 투쟁’에서 벗어났다. 지난 5월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후 연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연행과 집회 불허로 맞섰다. 첫날 대학생 73명을 연행한 데 이어, 다음날 집회에서도 학생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처럼 커질 것을 우려했는지, 청계광장에서의 집회는 무조건 불허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촛불을 끄려고 탄압할수록 촛불은 더 커졌다. 200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고등학생과 대학 졸업생, 학부모 등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하며 점점 참가 인원이 늘어나더니 지난 6월 10일에는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내가 다니고 있는 아주대학교 내에도 몇몇 학생이 매일 저녁 촛불을 들고 있고, 셋이서 들던 촛불을 지금은 열한 명이 함께 들게 되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선배도 함께 촛불을 들었다. “나는 이제 등록금 다 냈지만, 그 비싼 등록금을 몇 년은 더 내야할 너희와, 미래의 내 아이를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청춘들에게 ‘내일’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꿈과 희망의 말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춘들은 내일을 두려워한다. 내일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살아가야할 청춘들이 이처럼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2011년의 대학생들은 그 어느 시대의 대학생보다도 가혹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어두운 현실을 환히 밝히려는 청춘들의 촛불은 전경으로도, 살수차로도 막을 수 없다. 60년대 군사 정권의 탄압도 신영복 선생처럼 내일의 자유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망을 꺾진 못했다. 나는 오늘도 내일의 희망을 위해 촛불을 들러 나간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의 한 구절처럼 작은 힘 하나하나가 모여 언젠가 현실의 벽을 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