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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쌤스타그램 #페미니스트(박선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4-25 15:03
조회
1637

박선영 / 회원칼럼니스트


  ‘인스타충’을 ‘蟲(벌레 충)’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던데 그렇다면 나도 인스타충이다. 2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을 시작해서 요즘 한창 충실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사생활을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최근에는 내가 교사임을 알 수 있는 사진도 올리고 있다. 인스타에 충실해지니까 인스타에 자주 들어가고 사진을 자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검색까지 인스타를 통해 하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을 검색하면 내가 알고 싶은 정보에 관한 방대한 사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핫한 맛집, 감성 충만한 카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댕댕이짤(멍멍이+움짤)까지 모두 인스타를 통해 찾아본다.


  특히 인스타는 나의 관심사를 찰떡같이 알고 그와 관련된 사진을 계속 제공해준다. 이미 검색창이 내가 좋아할 사진들로 가득 차있고 새로 고치면 또 다른 사진들로 채워진다. 2000년대에 싸이월드에서 파도를 탔던 것처럼 인스타에서 사진을 타고 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어김없이 인스타를 탐험하던 어느 날, 우연히 ‘#쌤스타그램(선생님+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나와 같은 교사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거의 예술과 같은 판서와 칠판 그림, 매일매일 공개 수업을 하나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학습 자료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새 나는 인스타 검색창에 ‘#쌤스타그램’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쌤스타그램’을 검색한 인스타 화면은 교사들의 ‘셀카’ 사진으로 가득 차있었다. 대부분 여성 교사들의,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몸매를 강조한 사진들이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같은 인물 사진이라도 보는 사람은 그 의도를 구분할 수 있다. 교실을 배경으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포즈를 취한 ‘교실 셀카’가 한 ‘여성 교사’의 인스타 피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보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인스타는 사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한 명의 ‘인스타충’으로서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교사라면,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맞춘 외모를 전시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서 미디어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교사라면 말이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갈무리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성에게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대중매체의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사회적으로 다시금 환기되었다. 예를 들어, TV에서 재연되는 십대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는 청순하냐, 섹시하냐, 아니면 둘 다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단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당신이 지금 떠올리는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과 하얗고 극단적으로 마른 몸’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비해 남자 연예인의 외모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다양하다. 여성 청소년들은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조각조각 나누어 끊임없이 평가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 청소년들이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미용과 성형은 아주 큰 돈이 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성의 꾸밈을 조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꾸미는 자유’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문이 든다.


  특히 요즘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전의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유튜브와 SN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시대이다. 초등학생이 화장을 가르쳐주는 뷰티 유튜버를 자처하고, 어린이에게 화장을 시키며 어린이 화장품을 소개하는 컨텐츠가 비판을 받는 와중에 일반 SNS 유저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SNS가 비공개 계정이 아니고서는 비밀 일기장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계정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은 나의 일상, 취향, 생각 등을 알리고 공유하겠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스타는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사진을 범주화하면서 사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사진이 많이 노출되기 바라는 유저들은 자신의 사진과 관련된 수많은 해시태그를 게시물에 달아놓는다. 예를 들어 #쌤스타그램#출근룩#dailylook#일상#피곤#월요병 이런 식이다. 누군가는 ‘좋아요’를 많이 받고 팔로워를 유입할 목적으로 사진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접근성이 높은 해시태그를 몇 줄씩 달아놓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의 적극적인 SNS 활동이 미디어 컨텐츠 생산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사들에게 탈코를 강요하며 얼굴 사진을 SNS에 일체 올리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쌤스타그램’을 달고, 프로필에 교사임을 밝혀놓고 게시물을 올리거나 컨텐츠를 만드는 교사라면 그것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쉽게 학생들의 역할 모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외모, 체형, 라이프스타일, 취미, 재능 등을 가진 교사의 존재만으로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SNS나 미디어 창작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다양한 삶을 상상하는 데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나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그리고 너무 이쪽만을 봐왔을 학생들에게 ‘저쪽’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선택했다.


  내가 학교에서 매고 있는 출입증에는 3년 전 나의 사진이 붙어있다. 머리가 길고 화장을 한 내가 사진 속에서 예쁘게 웃고 있다. 그때 당시에는 ‘선생님 예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예쁘다’라는 말에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여성이 인정받는 방식이고, 여학생 스스로도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의 모습이 은연중에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출입증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학생들이 깜짝 놀란다. 나는 3년 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때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에 가깝고 훨씬 자유롭다고 느낀다. 짧은 머리에 화장을 안 하고, 통바지와 긴 치마를 주로 입으며 축구나 스쿼시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이런 유형의 여성 어른을 만나는 경험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교사들이 나처럼 하고 다닐 필요가, 굳이 축구를 좋아할 필요가 있겠는가. 화장한 나의 얼굴을 예쁘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외모 칭찬도 평가가 될 수 있으니 하지 말자고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함께 토론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사의 외모보다 다양한 취향과 재능을 드러내보는 것은 어떨까. ‘#댕댕이’를 검색한 인스타 화면에 종종 음식 사진과 셀카가 끼어있듯이 ‘#페미니스트’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인생을 살게 된 나도 내 말이나 행동이 혹시 페미니스트답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교사로서 나는 더 이상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의 가치를 되물림하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페미니스트’를 달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와 나를 만나는 학생들에게 더 큰 자유를 줄 거라는 것을.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