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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목욕탕…차가운 커피를 들이키며 (박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28
조회
417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나는 목욕탕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네 목욕탕을 찾아가 따뜻한 탕에 목 끝까지 몸을 담그고 노곤한 한숨 소리를 낸다. 과학적인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고 앉아 있으면 어깨에 두덕두덕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평소 워낙 좋아하는 차가운 커피까지 한 잔 사서 쭉쭉 빨아먹으며 눈을 껌뻑껌뻑 거리고 앉아있으면,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목욕탕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몇 시간씩 버틸 수 있는 곳이다.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다음과 네이버의 뉴스들, 페이스북 담벼락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또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오고 가는 사사로운 정보로부터 모두 자유로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장소다. 이쯤 되면 아마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그 많은 소식들이 너한테 가서 억지로 척, 하고 달라 붙기라도 했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피난이라도 가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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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xabay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내가 접하는 뉴스들은 모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알고자 한 사안들이다. 나는 대체로는 세상일을 알기 위해 기꺼이 내 시간을 할애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적인 인간이라서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뉴스를 ‘구독’한다. 그럼에도 유독 2016년은 그런 인간으로 사는 일이 마음에 큰 부담을 지워주는 한 해였다.


뉴스를 보는 일이 개인에게 심적 부담을 안긴다면, 대개 그 뉴스가 그 사람의 하루를 원치 않는 방식으로 바꿔놓고야 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2016년에 벌어졌던 어떤 사건 때문에 한여름의 뙤약볕에 맞서며 강남역 10번 출구 옆에 오래도록 서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광화문 광장 근처에 한참동안 머물렀다. 이전에는 결코 그런 일로 그런 때에 그 장소를 찾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두 사건이 아니었다면 보통 나는 그 시간에 필요한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목욕탕 같은 곳에서 말이다.


행동하는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물론 온당하고, 또 멋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이렇게나 자주 통렬한 마음을 품고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을 해야만 하는 나라라면 그곳에 사는 국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그 국민이 학생이라면 늘 주어진 공부나 실습을 할 테고,나 같은 생업 노동자라면 매일같이 할당된 노동을 할 테니까. 그러고 나면 대개의 남는 시간에는 다시 돌아올 다음 주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2016년은 많은 개인들이 자신만의 휴식 시간을 과감히 포기하고 사건의 현장으로 걸어 나간 해였다.


2017년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개인의 시간을 헌납해야 하는 곳에 살지 않았으면 한다. 무더운 여름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늦은 시간까지 시원한 맥주 몇 잔을 마시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추운 겨울이 오면 방구석에 틀어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이나 까먹으며 TV를 보다가 온 저녁 시간을 다 보내도 괜찮을, 그런 나라이길 바란다.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 1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