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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아젤라스트와의 싸움 (강은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5:07
조회
497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는 ‘아젤라스트’(agelaste)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웃지 않은 사람, 유머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신조어다. 깊은 의미에서 아젤라스트는 우리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계를 위협하는 적이다. 그들은 웃을 줄 모르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와 똑같다는 확신을 가진다. 더해서 통속적인 생각과 ‘키치’(본래 ‘저속하고 유치함’을 뜻하나 쿤데라는 여기에 더해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꾸미려드는 조악함’을 추가함)가 특징이다. 이는 우리 국민이 현재 싸우고 있는 정부의 모습이 아닌가?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의 값을 돈으로 환산해 유족들에게 선심 쓰듯 미소를 짓는 정부는 진정 웃음을 모르는 아젤라스트들이었다. 지금과 같이 촛불의 열기가 전국을 뒤흔들고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돌아볼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뜻이 옳다고 고집한다. 국회의 탄핵 결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젠가 끝나리라” 여기며 뻔뻔스레 버티고 있다. 대국민 담화는 또 어떠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지층에게나 통할 눈물의 사과는 '키치'의 극치였다. 정부뿐 아니라, 이 사건에 얽힌 부패한 재벌, 검찰, 언론, 관료집단은 명령과 규율뿐인 복종의 세계 속에 머무르며 진실을 가리고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플로베르는 “현대의 멍청함은 완전한 무지가 아닌, 판에 박힌 언행의 반복”이라 했다. 이 얼마나 멍청한 시스템인지.


이번 사건으로 최근 제일 많이 듣고 스스로도 물었던 질문은 “무엇에 가장 상처받았고 분노하는가?”였다. 아무리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현대사회라지만 나름대로의 개인적 신념이 있어 정의를 믿고 국가를 사랑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를 지켜줄 의무가 있는 정부는 사상누각에 불과했고, 심지어 우리 모두의 믿음을 배반하고 조롱했다는 점에 화가 많이 치밀었다. 더 원초적인 분노는 “무언가를 마음 놓고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최근 시국선언으로 유명했던 한 초등학생이 “한창 게임 레벨업 해야 할 때, 친구들과 노는 얘기, 즐거운 얘기가 아닌, 나라 걱정을 하게 해줘서 참 감사하네요”라고 말한 것처럼 주말마다 벌어지는 아젤라스트와의 전투와 나라 걱정에 지칠 때도 많다.


20161220web01.jpg사진 출처 - 뉴스1


20161220web02.jpg사진 출처 - YGSU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가하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정말로 큰 위로가 된다. 심각하게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지만, 지치지 않기 위해 웃음을 나누려는 노력도 있다. ‘그만두유’처럼 시국을 반영하여 만든 패러디 상품과 개사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고, 각종 재치 있는 깃발과 퍼포먼스처럼 긴장과 고단함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정부와 부패 집단들은 시민의 인권을 뭉개고 기계적인 꼭두각시들을 만들고자 했겠지만, 국민은 증명했다. 우리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개인에 대한 존중과 독창적 사고를 그들에게서 잃지 않았고, 지켜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원동력으로 싸우고 있다.


본래 아젤라스트들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과 큰 마찰을 빚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들이 집회에서 보여준 앞서 말한 풍자와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꽃차벽이나 1분 소등, 수많은 촛불들을 보면 이미 예술의 영역이다. 쿤데라는 “예술은 항상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의 실존과 그 정신을 담고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즐기고 웃을 줄 모르는 아젤라스트와의 싸움에서 결과는 뻔하다. 항상 승자는 웃는 자이며, 가장 오래 아름답게 웃을 것이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