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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공돈 50만 원’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이은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50
조회
893

이은주/ 청년 칼럼니스트


“저에게 산다는 건, 버티는 거예요”


청년들의 현실 고민과 갈등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내 많은 20대들의 공감을 사며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윤진명이라는 인물은 ‘산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그녀는 식물인간 동생, 동생을 간병하는 어머니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낮에는 대학 수업, 저녁에는 레스토랑 홀서빙 알바, 새벽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취준생의 최전선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하루 버티기에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대기업 공채 면접 기회라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최종 면접의 결과는 낙방이었다. 불합격의 이유는 알고 보니 ‘복장 불량’. 구두를 살 돈이 없어 레스토랑 알바에서 신던 낡은 구두를 면접장에 신고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수년간 계속한 알바로 앞코가 다 까져버린 검정 구두, 상처투성이였던 그녀의 발에 기업은 ‘불량’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나 또한 (극중 윤진명처럼 투잡을 뛰지는 않았지만) 학기 중에 알바를 병행했던 적이 있다. ‘간단한 구직비용’, 즉 매달 토익응시료나 자격증 준비 비용정도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내고 싶어서였다. 나와 같은 이유로 알바를 했던 취준생 친구들도 이 ‘간단한 구직비용’ 때문에 용돈을 벌면서도 허리띠를 졸라매야했다. 마치 CMS자동이체처럼, 각종 공인영어시험과 자격증 준비비용은 그나마도 몇 푼 안 되는 알바비에서 매 달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그만둘 수도 없는 알바 때문에 취업공부를 할 시간도 없다는 하소연은 우리들 대화의 일상 주제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취준생들은 ‘어디 하늘에서 돈이 뚝! 하고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곤 한다. 맘 편하게 취준만 걱정하고 살기에는, 기본적인 구직비용을 짊어지는 것조차도 버거운 청춘들이었던 것이다.


20160907web01.jpg드라마 <청춘시대>에서 극 중 윤진명(한예리)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하는 ‘생계형’ 취준생의 단상을 그려내며 이 시대 청춘의 삶을 현실적으로 대변했다.
사진 출처 - JTBC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이런 청춘들에게 마른하늘에 단비 같은 정책이다. 만 19세에서 29세까지, 저소득층이며 주당 근로시간이 30시간 미만인 청년들에게 한 달에 50만 원씩 6개월간 지급하는 청년수당은 청년들의 텅 빈 주머니를 채워주며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이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청년수당은 그야말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청년수당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돈 50만 원을 그냥 쥐어주는 꼴’, ‘복지 포퓰리즘과 복지병이 우려되는 정책’이라며 비판한다. 청년수당에 난색을 표하는 이들이 말하는 “고작 50만원이 취업에 도움이 되겠어?”라는 문법의 기저에는 사실 청년들의 속사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청년들의 구직비용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빈곤하기만 하다.


청년수당을 단순 ‘공돈을 쥐어주는 정책’, ‘포퓰리즘 정책’으로만 보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청년수당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등 여러 청년단체가 직접 논의하고 기획하여 무려 2년간의 치열한 토의를 거쳐서 나온 ‘청년메이드’ 정책이다. 사실 청년이 처한 현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당사자, 바로 청년들이다. 청년수당은 단순히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급조된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주인공인 청년들의 제안을 아래로부터 수렴해온 결과물이다. 서울시는 다년간 정책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청년맞춤형 정책을 민주적으로 이끌어냈다. 청년수당을 단지 표나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청년수당의 본질은 ‘공돈만 쥐어주는 정책’이 아닌, 청년 스스로 구직관련 활동을 찾아나서며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자율성과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고학력 니트(NEET)족은 4명 중 1명이라고 한다. 게다가 국내 니트족의 38.7%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비구직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 매해 최고치를 기록하는 청년실업률, 높은 취업 장벽과 구직난도 심각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길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거리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수당은 틀에 짜인 직업 고용 훈련과 취업연계제도에 적응하기 힘든 ‘사회 밖’ 청년도 포용할 수 있는 복지정책이다. 서울시는 연계사업으로 마음이 맞는 청년들이 모여 스스로 진로모색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청년들은 ‘공돈’ 50만 원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고, 구직활동을 능동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단, 청년수당 대상자의 취업활동 진행상황에 대한 평가는 월별 보고서의 공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청년수당의 출발점이 ‘청년메이드’였듯이, 정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도 청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청년수당은 청년정책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청년정책의 활로를 찾는 기대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청년정책을 되돌아보면, 임금피크제 도입·공공기관 청년의무고용할당제 등 청년취업정책을 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만 집중하여 청년들이 처한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청년들의 취업알선을 도와주는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취성패’를 통한 고용유지율이 45%에 못 미치는가 하면 제한된 훈련과정, 직무와 관련 없는 질 낮은 일자리 연계 등으로 취업자의 절반이 퇴사하는 등 허점이 여럿 존재한다. 청년수당은 청년들의 피부에 와 닿는 금전적 지원을 함으로써 소외된 청년의 사회참여율을 높이는 정책이다. 현재 정부가 ‘적극적인 일자리정책을 실천하지 않고 돈만 쥐어준다’며 청년수당을 힐난하는 것은 청년수당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맹비난을 하는 것과 같다. 청년수당은 오히려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이 연달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에게 새로운 구직 사다리를 만들어줄 정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청년수당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이 필요하다. 청년수당 지급대상자가 되면 비싼 방 임대료를 낼 때 쓰겠다는 청년부터 학원비와 인터넷강의료에 사용하며 알바 할 시간을 벌겠다는 청년들까지, 각자의 사연만큼 청년수당의 사용처도 다양하다. 여유가 필요한 청년들에게 한 달 50만 원이라는 돈은 단순한 공돈 그 이상이다. ‘사는 것은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며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취업준비생들, ‘간단한 구직비용’이라도 벌기 위해 각종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 미래도 진로도 잃어버린 사회 밖 청년들을 위해 청년수당은 절실하다. 각박한 취업시장 속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청년들이, 우리 사회 속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입장료인 셈이다. 청년들이 이 ‘공돈’을 통해 얻게 될 것은 돈과 시간, 그뿐만 아니라 정서적 여유와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청년수당의 진짜 목적은 아마도 ‘공(空)돈’이 단지 ‘빈 돈’이 되지 않도록 청춘들을 위로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은주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6년 월 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