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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자본화, 현혹되지 말 것 (강은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47
조회
348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연봉도 적다며.”


“얘, 너희만 좋자고 하니? 체면이 있지.”


“자네 번듯한 집도 없이 지금 결혼하겠다는 건가?”


최근 방송하고 있는 공익광고 <새로운 결혼문화>에 나오는 말들이다. 광고에서 보이듯 한창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갈 예비부부들이 가족과 친구들의 참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대 미혼남녀 839명을 대상으로 결혼 안 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49.7%가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 했고, 가장 필요한 결혼 정책에 대해서는 61.2%가 ‘청년고용의 안정화’를 꼽았다. 체면과 번듯함이 중요한 결혼을 만족시키기 위해, 경제적 안정이 뒤따르지만 그렇지 못해 포기하고 안 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이런 체면과 경제적 불안정 때문에 청년들의 연애와 사랑의 의미들 또한 변질되어 혼란스럽다. 그들 연애의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로 중계된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는 타인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보다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진실한 관계보다 어느 맛집을 가서 얼마짜리를 먹었는지,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어디를 가서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를 과시한다. 심지어 자신이나 상대방의 외모도 견적 받는다. 대화 내용도 그대로 노출되는데, “내가 이만큼 하는데, 넌 왜 그만큼 못해주냐.”는 식의 다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손익으로 계산되고 값이 맞으면 거래한다. 능력이 없으면 이 거래에 끼지도 못하고 낙오된다.


20160817web01.jpg사진 출처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영국의 사회연구가 캐서린 하킴은 그의 저서 <매력 자본>에서 결혼은 이미 시장화됐을뿐더러, 연애 또한 돈이 없으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자본화 때문에 우리가 ‘보이는 것’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하킴은 시대에 맞춰 그런 보이는 매력을 다양하게 개발해 갖추고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그런 노력도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나 전략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 경쟁으로 얻어지는 애정이 과연 만족감을 줄까? 오히려 번듯함을 향한 허영과 타인에 대한 무례한 간섭을 부추기는 꼴이 아닐까? 끝이 없을 것이다.


앞서 미혼남녀들이 말하듯 청년들의 사랑을 위해 고용이 안정됐으면 하는 바람도 크지만, 이 또한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경제적 결핍과 불안정함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불안 때문에 보이는 면에 현혹돼, 타인을 비난하거나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이미 물질들로 바뀌어 표현되어 왔다. 관계나 애정은 항상 심오한 것이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상품처럼 쌈박하게 굴러갈 수 없다. 항상 모가 나있고 잘못돼서 망가지기도 하지만 이런 불량품들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 아닌가.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완벽하고 보기 좋은 것만 너무 강요하지는 않는지. 안온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진실된 배려부터 시작해봄을 권한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이 글은 2016년 8월 1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