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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당신도 페미니스트 (박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4:28
조회
283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여성들 중에는 자기의 외모가 남성중심사회에서 굉장히 잘 먹혀들어 간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있죠.”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몇 차례 후원회원 인터뷰를 맡은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한 남성 연극연출가는 꽤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남성 중심적 사회가 유지되는데 남성만큼이나 기여하는 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이런 존재를 ‘공모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20160615web01.jpg사진 출처 - ‘공모하는 여성’ (보부아르, 제2의성)


자신이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생각을 토대로 자신감 있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사교성을 발달시킨 여성들은 실제로 꽤 많다. 이런 경우 그녀를 싫어할 남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 번 꼬셔볼까?’ 하는 동물적 접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개 외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내적 자신감까지 겸비하게 된 여성은 뭇 남성의 호감을 사게 마련이다. 그런 여성은 ‘예민할 이유’가 없다. 존재가 호감으로 이어지는 마당에 구태여 조연 취급을 받거나 모욕당하는 여성들의 감정에 이입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런 여성을 근거로 들어 페미니스트를 비하한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식이다. 경쟁력 있는 외모를 가져서 남자들에게 사랑 받으면 그런 투쟁을 할 리 없다는 것이다. 공모하는 여성은 이런 이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 쉽게 부인될 수 있는 것이다.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는 미소년같은 중성적 외모로 사상만큼이나 외모가 매력적인 페미니스트로 평가받는다. 올해 초 “1년간 연기 쉬고 페미니스트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선포한 엠마 왓슨을 비롯, 헐리웃 여배우들 다수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한다. 그녀들이 외적 자격지심 때문에 페미니즘을 말할까?


20160615web02.jpg엠마 왓슨
사진 출처 - UN Women


공모하는 여성의 존재가 페미니즘의 역사에 안긴 가장 큰 고민은 오히려 이런 것이다. ‘어떤 여성은 차별 받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이 다수 존재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여성 평등 운동의 동력을 확장할 수 있을까? 같은 여성조차도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답은 결국 ‘성별을 뛰어 넘은 페미니즘’에 있다. 그것이 내가 한국여성의전화에 후원하는 '남성 회원'을 인터뷰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이상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성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조롱당하거나, 모욕당하거나, 상처받은 개인 중에는 남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까지 감싸 안을 때 페미니즘의 생명력이 확장될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과거 칼럼에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바탕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남성이지만, 남성주의적 패권과 권력 담합에 강제로 희생된 힘없는 개인이기도 했다. 때문에 페미니즘은 언제고 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남성이지만 남성주의에 무릎 꿇려진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페미니즘이 더 이상 성별구도가 아닌 ‘강자에 맞서는 약자’의 프레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강남역 화장실에서 이유 없이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리던 여러 남성들을 기억한다. 나와 함께 10번 출구 부근에 나란히 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들은 주로 2-30대의 젊은 남성이었다. 이 세대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기득권으로 통칭되는 세력의 남성주의적 폭력성에 시달려본 경험이 있는 사회적 약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 역시 약자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 시류는 지금, 페미니즘 운동의 확장성을 말하고 있다. 공모하는 여성은 성별만 여성일 뿐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반대로 남성주의의 테두리 밖으로 삐져나온 남성, 남성주의적 폭력성에 상처받을 수 있는 남성은 언제든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존 레전드가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 이유이고, 정희진이 노무현을 안타까워할 수 있는 이유이며, 이 글을 보는 당신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글은 2016년 6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