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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팔이가 가린 인문학 본령 (전세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52
조회
496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1% 부자들의 성공비결은 인문고전이다.”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겉표지에 있는 글귀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부자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이러한 책들은 상위 1% 부자들이 모두 인문학 서적 애독자들이었고,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문학 부자론’을 설명한다. 자본주의 시스템도 인문학을 통해 만들어졌음으로, 인문학만 이해해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인문학 부자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이다. 이병철 전 회장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논어》였다고 한다. 지금의 삼성을 창업하는 데 있어서 인문고전을 통해 얻은 사고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자기계발서들은 설명한다.


인문학 부자론은 허구다. 인문학을 액세사리처럼 쓰는 부자들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실제 인문학 전공자들의 현실은 참혹하다. 인문계 전공자들은 1% 부자는커녕 먹고 살 것을 걱정하고 있는 판이다. 인문대학생들은 인문학도 90%가 놀고 있어 ‘인구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뉴스토마토> 설문조사에서 인문대학생 70%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다시 입시를 치르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인문학을 더 공부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10년만 꾹 참고서 인문고전을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책들의 설명과 달리, 인문고전만 10년 넘게 읽은 인문계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현실은 보따리장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학에서는 인문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으로 성공했다는 스티브 잡스가 우리나라에서 성장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 아무 이유 없는 인문학 독서를 하고 있는 철학과 중퇴생을 받아주는 사회가 아니다. 물론 잡스는 인문학 부자론자들의 주장처럼 인문학만 가지고 성공한 게 아니지만 분명히 잡스의 성공에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었다. 만약에 잡스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이런 상상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투자의 천재’라 불리는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는 철학자가 되고 싶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3년간 철학 공부만 했다. 단지 철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조지 소로스의 결단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20150715_aaa11_ykim98.jpg사진 출처 - 뉴스토마토


인문학의 본령은 무용함, ‘쓸모없음’이다. 회사 출근, 학교 진학과 같은 일상은 삶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취직하지 못했다고, 진학에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져도 우리 인간은 우주의 일부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다.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의 과정이 인문학의 본령인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스티븐 잡스나 조지 소로스처럼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삶과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인문학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인문학을 대해야 할까. 우리는 인문학의 ‘무용함’을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당연 인문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 부자론도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나,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생각까지도 이 우주의 작은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다. 지금 보기에 비효율적이고 이상적이기만한 이 인문학의 본령이 반복되는 일상과 경제적 어려움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진짜 쓸모는 쓸모없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를 택하련다(將處乎材與不材之間)”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