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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를 부숴라 (박보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34
조회
670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새터(새내기 배움터)를 떠나는 첫날, 학회장 언니가 말했다. “여자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고, 남자 친구들은 올라와서 짐 나르자.” 그 말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끝까지 여대를 고집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여대를 가진 못했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종종 여성으로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사회의 분위기를 대학은 그대로 흡수했다.

취준생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회 구조도 더 쉽게 보였다. “은행권 준비할 거야? 남자가 여자보다 더 쉬워. 여자는 똑같이 스펙 쌓고도 얼굴이 이뻐야 하거든.” 총학생회 부회장 출신의 여자 친구는 면접을 볼 때마다 학생회 이력에 관한 질문을 꼭 받았고, 다들 부담스럽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결국 친구는 이력서에서 ‘부회장’을 지웠고 지금은 학생회 경력 자체를 지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은행 인턴인 한 친구는 노골적으로 이쁜 여자를 밝히는 남자 직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했다. 술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외모와 몸매 이야기를 하며 시시덕 거리는 분위기는 친구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가부장제

여전히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위의 이야기들처럼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차별도 있고, 너무 깊고 당연시되어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가부장제’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가부장제는 더 깊고 단단한 세월을 보냈다. 가부장제 하에선 육아는 당연히 여자의 역할이고 자연스럽게 남자의 역할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 돈 버는 것이 된다. 왜 요즘 유행하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어머님이 누구니~ 어떻게 너를 그렇게 키우셨니~” 이처럼 자식의 육아 몫은 어머니에게 있다.

이런 가부장제 하에 억압받은 여성들은 병이 생긴다. 그게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우울증의 종류가 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생리 우울증, 육아 우울증, 출산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등.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한 통계에서 2013년 한해 심한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66만 4600명이었으며 여성 환자의 비중은 약 77%로 남성 환자의 2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의 치료 과정을 살펴보면 갱년기 여성의 경우 ‘삶의 목표 찾기’가 치료 과정의 주요 과제다. 이런 현실을 본다면 여성의 우울증은 신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여성의 사회화 과정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가부장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진 출처 - 뉴시스


 

그런데, 가부장제의 피해자는 오롯이 여성일까? 어찌 보면 남성이 가부장제의 가장 불쌍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최근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들이 한창 클 나이에 아빠들은 제일 바쁘다. 때문에, 남자아이들은 인간적인 아버지보다는 사회적으로 정해져있는 남성의 역할을 습득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조건 강해야 하며, 어깨에 짐을 져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재작년(2013년) 우리나라 자살률 중 연령별 자살 분포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집단은 남성 노인이었다. 남성에게 씌워진 책임감, 가정 내에서의 고립감은 가부장 제도의 결과물이다.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아빠와 자식들의 관계는 엄마와 자식들의 관계보다 항상 멀다. 외롭다. ‘부성애’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다. 남성의 부성애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빠를 부탁해>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요즘 티비에 ‘아빠’가 자주 나온다. 특히 배우 엄태웅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쉽게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은 남성의 틀을 깨부수고 있다. 이제 슈퍼맨이란 가면을 쓴 아빠를 가정으로 불러야 한다. 가면을 벗은 맨 얼굴의 사회는 분명 따뜻할 것이다.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