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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래야만 하는 것 (황은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2-23 12:58
조회
912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1994년 5월.


내가 태어나기 두 달 전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엄마는 말했다. “그날 왼쪽 고막이 터졌는데 피가 고였다. 기절하고 깨어나니 굳은 피가 뺨에서 후드득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 뒤로부터 매일같이.


새벽 4시까지 나와 형, 엄마는 잠들지 못했다. 억센 손끝에서 벌어진, 무참한 폭력이었다. 칼등으로 맞고 발목을 붙잡혀 옥상에 젖은 빨래처럼 널어졌다. 아빠의 송곳니에 손톱이 깨지기도 했다. 백과사전을 5권씩 올린 의자를 들고 한 시간 동안 벌을 받은 날도 있었다. 아빠가 죽었으면 했다. 온통 피멍이 든 몸으로,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는 자신의 형을 끌어안고 그런 생각을 했다.


또 그 뒤로부터, 중학교 교복을 개켜 넣어두기 전까지.


가정폭력에 시달려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란, 가난하고 왜소한 아이는 학교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끌려가 이유 없이 맞았고 이유 없이 대걸레를 빤 구정물 세례를 받았다. 이 또한 이유는 없었다. 누구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이.


철이 일찍 든 탓에 모든 괴로움을 안으로 꾹꾹 삼키던 아이는 “가서 용돈 좀 받고, 가족들 좀 만나고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너머 여주로 향했다. 아이의 친가 가족들이 말했다. “늬 에미가 너희 아빠 망쳐 놓은 거야.”, “벼락 맞아 죽을 년.”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아이는 독하게 변했다. 세상의 모진 멸시에 지쳐 스스로 서기로 했다. 그러나 비행을 일삼았다. 옥상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누군가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었다.


그러다 교복을 개켜놓고 나니.


아이는 세상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구제불능 소리를 늘 듣고 살았으므로 그저 구제불능이었다.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다. 사는 것이 괴로워 매일 목구멍 너머로 알코올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마신 술이 일 년이면 오백 병이 훌쩍 넘었다.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넌 우리 가족이랑 연 끊고 살래? 여주 안 오냐?” 아이는 더 잃는 것이 무서워 여주로 향했고 사람들은 태연했다. “왜 그러고 사냐.” “사지 멀쩡한데 좀 생활력 있게 독하게 살아라, 좋은데 좀 취업하려고 하고.”


하여 지금 그 아이는.


황은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신병원을 다닌다. 얼마 전이다. 우울은 삶의 전반을 차지했고 떠나지 못했다. 자신이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상처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아이는 억울했다. 아이는 누군가를 상처주기 싫어 병원에 다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게. 하여 아이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9개의 알약과 저녁에 12개의 알약을 입 안에 털어넣는다는 사실을 고했다. 아버지는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너희 엄마 탓이야.” 그리곤 ‘꺼지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그 무참한 상처들에 속죄를 하라는 아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글을 써 말하고 싶었다.


“인간 내면의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고.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말이다. 아이의 형 말마따나 “털어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든,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피폐하게 사는 인간”이 되든, 그런 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없이. 내면 깊숙이 각인된 폭력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그 사실을 아는 아이는, 그러므로 자신과 같이 슬픔 속에 사는 인간들이 더 생기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자신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엉켜버려서 도저히 풀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아이는 그저 말하고 싶었다.


인간은 평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드시 겸허히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반드시 속죄하고 고두(叩頭)하며 살아가아 한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일에는 이유도 순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파괴하고 죽이며 살아가게 될 거라고. 잘못했을 때는 반드시 용서를 빌라고. 더 곪아 터지기 전에, 더 썩어 슬프고 우울한 늪을 만들기 전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그것은 어떤 이유도, 변명도, 사정도, 배경도 필요하지 않은, 너무도 당연히 그저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황은성: 저는 황은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