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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도련님(조소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2-08 15:53
조회
1092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곧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설 연휴가 시작된다. 5일이라는 긴 연휴에 먼 친척까지 다 같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함께 쉬러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라면 소위 말하는 ‘명절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여행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 스트레스가 있다. 바로 ‘호칭 스트레스’이다.


 우리나라의 친족 간 호칭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헷갈리기 때문에, 본인이 결혼하거나 형제자매가 결혼하게 되면 한 번쯤은 네이버에 ‘가족 호칭’을 검색해보게 된다. 그러나 호칭 스트레스는 단순히 호칭이 어렵다는 것에 오는 스트레스는 아니다. 결혼한 여성에게는 호칭의 성차별적인 요소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2011년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한 경우 배우자의 동생에게 ‘아가씨’ 또는 ‘도련님’이라는 높임말을 써야하는 반면, 남성이 결혼하면 배우자의 동생에게 ‘처제’ 또는 ‘처남’이라는 호칭을 쓰게 되어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은 나이 불문 배우자 집안의 서열을 따르게 되어있지만, 결혼한 남성의 경우 나이에 따라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는 점도 많이 지적된다. 계속되는 민원에 여성가족부는 결국 작년 8월 말 성차별적 가족 호칭의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마침 설을 앞둔 1월 22일, 또 한 번 가족 호칭 문제에 대안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듣고 호칭 하나 바꾼다고 이미 현존하는 성차별적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만일 언어가 단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라면 가족 호칭 개선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히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 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언어를 사용한 사례는 많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택한 여러 장치 중 하나였다. 덕분에(?) 조선시대 이후로도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강력한 규범력을 갖고 한국의 수직적 사회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몇 년 전부터 IT업계나 스타트업에서는 호칭을 통해 문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카카오에서는 모든 사원이 별명을 만들어 직급 대신 그 별명으로 부르고, 페이스북 코리아에서도 직급 대신 ‘OO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윤을 추구한다는 기업이 굳이 추가적인 자원을 들여서까지 사원에게 호칭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중


 결혼 뒤 느끼는 차별 문제를 다룬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가 최근 여성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웹툰의 제목 ‘며느라기’는 며느리를 부르는 ‘며늘아기’를 빗댄 말로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라는 의미이다. 결혼한 여성이 ‘며느라기’에 빠져 자신을 ‘참고 희생하는 며늘아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 상황이 어쩌면 배우자의 가족을 ‘아가씨’, ‘도련님’으로 귀하게 모셔야 한다는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문화, 전통,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차별적 언어와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다. “예(禮)”란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한다. 이 존경심이 결혼한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진 않은지, 결혼한 여성은 충분한 존경을 받고 있는지,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