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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결혼하셨어요?” (주윤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8-28 10:43
조회
1757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 프롤로그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일정 중간에 우리 팀의 현지 가이드가 다른 한국팀을 인솔하는 가이드 친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나눴는지 물으니 그들의 표정은 희극으로 보였으나 실제 대화 내용은 비극이었다. 한국 남성이 그 가이드의 결혼 여부를 집요하게 묻고 결국 싱글이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추근대서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성희롱이 문제시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여기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국남성이 현지인 가이드에게 결혼 여부를 질문하는 대목이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안면만 트면 상대에게 궁금해서 죽을 것 같은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나이가 몇 살인지, 결혼했는지 혹은 왜 안하고 있는지, 했다면 아이가 몇 명이며 몇 살인지, 둘째는 왜 안 낳는지…. 글을 쓰다 보니 외둥이는 외로우니 동생이 필요하다며 민간 출산장려홍보대사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던 나의 흑역사가 떠올라 지금에서야 외둥이 부모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우리는 왜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궁금한 것일까? 한국인이 유독 궁금증이 많은 DNA를 보유한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사생활 정보에 집착하는 데에는 단순 호기심이나 사실 확인 이면에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나이를 궁금해 하는 것은 연령(차별)주의 때문이다. 관계를 형성하는 초기 단계에 상대가 나의 위인지 아래인지를 파악하여 우선 나이 서열부터 정립하려는 것이다. 연장자에게는 조용히 입 다물고 순응할 예의를 갖출 준비를 할 것이고, 나보다 어린 상대에겐 하대할 위엄을 장착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동갑을 만나게 되면 근거 없는 친밀감과 추상적인 동질감이 자동으로 형성되며, 동시에 얼굴 나이(동안)를 비교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가늠하는 경쟁심리가 작동하기도 한다. 신분제가 폐지된 지 10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도 무수한 서열과 위계가 존재하지만 연령주의는 성별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차별의 요소다.


 두 번째로 결혼 여부이다. 대개는 단지 사실 확인에 그치지 않고, 비혼은 비혼인대로, 기혼은 기혼인대로 그 다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치 정해진 대본이라도 사전에 공유한 것처럼 누구나 똑같은 질문들을 한다. 훨씬 더 이상한 것은 결혼을 왜 했는지, 아이는 왜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혼과 출산의 삶이 ‘정상’이라는 고정관념과 비혼의 삶을 개인의 선택으로 보지 않고 수동적 삶의 결과로 바라보는 비합리적이고 차별적인 통념 때문일 것이다. 특히 비혼 여성에게는 남모를 비운의 사연을 가공하거나 혼자 살 수밖에 없는 독립적 투사의 이미지를 덧씌우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라면 결혼과 출산은 경험해 봐야 한다는 설교를 하며, 지금은 몰라도 늙어서 외로움에 후회할거라며 남의 노후까지 저주해주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난해한 것은, 이들은 기혼자에게도 자동으로 기혼의 삶에 대한 절망과 넋두리를 공유할 정반대의 대사들도 차고 넘치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혼의 삶은 정상의 범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2018년의 현행 교과서나 성교육 보급 교재들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간의 발달과업처럼 표현되어 있음), 반면 기혼의 삶을 선택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성적 매력은 제거되고, 출산하면 공동체 사회에 피해를 주는 기괴한 존재(아줌마, 맘충, 김 여사 등)가 된다. 직장에서도 가사와 돌봄 노동에 치우쳐 공적 업무를 게을리하는 걸림돌로 전락한다. 또한 비혼의 취업준비 여성들에게도 ‘취집’이라도 성공하라며 다양한 언어폭력(김치녀, 된장녀 등)을 무시로 퍼부으며 이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공간으로 추측하는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혼 또는 비출산 여성에게 동료교사나 학생들의 보호자들이 ‘자녀를 낳고 길러보지 않았으니 부모 심정을 알기나 하겠어?’, ‘결혼을 안 해봤으니 가정생활의 희로애락도 모를 것이고 자녀가 없으니 학생들 마음 헤아리는 것도 부족할 거야’라는 언어폭력(그들은 이를 ‘조언’이라고 한다)을 앞뒤에서 하고 있다. 이 또한 자녀에 대한 가사와 돌봄 노동을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고다. 흔히 출산여성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직장의 저녁 회식에 참석하면 석연찮은 표정으로 “애는 어쩌고?”라고 물으며, 이 상황에서 그녀의 돌봄 노동을 대체할 대상 역시 남편보다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를 자동으로 연상하는 것 또한 성역할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일상들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학생에 대한 상담이 필요할 때 으레 어머니에게 요청을 하지 아버지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ㅠ.ㅠ).


 결국 우리가 타인에게 미치도록 궁금해 하는 사적 질문들은 2018년 대한민국이 연령과 성차별이 만연한 차별공화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니, 앞으로 ‘결혼하셨어요?’라는 말은 제발 묻지도 듣지도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을 만드는 것이 핏줄인지, 함께 보낸 시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진솔하게 응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에필로그
 여행 말미에 우리 팀의 현지 가이드는 여행사 대표에게 사진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의 남성여행객 팀이 현지 가이드 사진을 보고 가이드를 결정하겠다고 했단다. 우리 일행은 동시에 외쳤다. “Oh My God~!”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