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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비정규직 리포트(이현종)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0-04 13:26
조회
78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추석 전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뉴스에서는 매일 ‘초대형 태풍이 몰려온다’,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유리가 깨지고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이 태풍 경로까지 전부 예측해서 보도한 덕인지 인명과 시설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하지만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봤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언론과 세상은 태풍으로 사망한 분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죽음은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물 외벽이 떨어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생계 때문에 억지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알고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동네 중국집 사장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이번 태풍에 억지로 배달을 내보냈는데 배달원 세 사람 모두 오토바이가 쓰러져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험한 날씨에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억지로 태워 내보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대체 뭘 위해서, 사람이 죽든 말든 억지로 오토바이를 태워 내보냈을까, 정말 서글퍼지는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태풍 속 배달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로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떠밀려서 일을 했을 거다. 이에 대해 아마 누군가는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속 편한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을 거부할 경우 고용주로부터 온갖 불이익과 차별, 압박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국가와 사회가 방관한다는 것이 문제다.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들의 뒤를 지켜줄 제도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비단 배달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회의 3D 직업들, 특히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비극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주변에 이야기를 안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필자가 하는 일을 안 좋게 보는 시선, 동정하는 시선, 혹은 돈은 많이 벌지 않느냐는 부러움 섞인 시선들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등허리가 휘어지고 아프다는 소리는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산재 사고가 나도 시설 개선은 없다. 산재를 인정받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원청의 갑질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하청업체는 대책 없이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숙련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견디지 않는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초보자들이 대신한다. 손이 부족하니 작업은 매일 점점 늦어진다. 급여도 최저수준에 견준다.


가뭄에 콩 나듯 이런 현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현실에 누구 하나 그들을 돕지 않는다. 결국 나선 사람들만 손해를 보거나 욕먹고 회사를 그만두기 십상이다. 언론과 세상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비극은 이미 너무 흔한 이야기인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몇 명은 노동부에 신고를 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누가 죽어야지 바뀐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반대로, ‘누가 죽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알고 보니 이 분야와 관련한 작업장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고, 내가 일하는 현장은 유독 심각한 편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그리고 늘 있었던 문제임에도 관심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