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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3월에는 수고했습니다, 라고 말하자(김현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3-20 10:03
조회
950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교에서 한해의 시작은 3월이다. 그래서 새 학년의 개학은 3월 2일이고 교사나 학생들 대부분은 3월 1일 밤에 설레면서 또 긴장도 하면서 잠을 청한다. 학생들은 ‘어떤 친구 혹은 어떤 선생님을 새롭게 만날까?’를 걱정하면서, 교사들은 ‘어떤 학생, 어떤 동료교사를 만날까?’를 기대하면서 3월 1일 밤을 보낸다.


 교사들은 새 학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 방학을 이용해 여러 가지 연수도 받는다, 행복하게 학급을 이끌어가는 법이나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잘 정리할 수 있는 평가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기도 한다. 요즘이야 교사들이 이렇게 3월을 준비하지만 내가 초임교사였을 때 선배 교사들이 가장 많이 알려준 3월을 맞이하는 법은 ‘3월 내내 웃지 않기’와 ‘3월 첫날 수업에 들어갔을 때, 까불거나 개기는 놈은 보기 좋게 정리하기’였다. 정리하기는 좀 순화한 표현일 뿐이다. 3월에 저 두 가지를 못 하면 1년을 고생한다는 것이다. 순진한 나는 선배들 말을 믿고, 그대로 했다. 3월 내내 웃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까부는 놈은 앞으로 불러내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그런 교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교사들이 이런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교사가 만나는 학생 수는 도서벽지 학교를 제외하면 적지 않다. 나는 장학사로 전직하기 전에 중등 국어교사로 살았는데, 2017년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에서는 한 학급에 35명씩 있는 세 학급의 수업을 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과 수업을 하고 또 그 학생들의 평가도 해야 하는 것이다. “1년간 100명을 만나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라고 학교 밖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그 100명과 온전히 인격적으로 만나려면 교사가 감당해야할 감정노동의 강도는 매우 세다. 학생은 100명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개성과 그리고 각각의 삶들이 모이면 세 개의 교실엔 100개의 우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아주 편하거나 아주 고단한 방법 사이에서 고민한다. 물론, 고단한 길로 방향을 잡는 교사들이 더 많으니 걱정 마시길.


 교사가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학생도 교사를 인격적으로 대해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기엔 아직도 한계가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지만 여전히 차갑고 딱딱한 교실, 들어가기에 조금 망설여지는 교무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며 한 끼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급식소, 위생상의 문제와 관리의 편리함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스테인리스 식판. 이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랫동안 익숙한 것이지만, 학교에서의 익숙함은 어쩌면 교사와 학생을 인격적 만남을 방해하는 디테일한 악마였을지 모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학교 공간이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직선을 곡선으로 회색은 봄빛으로, 급식소는 줄을 서서 흘리지 않고 먹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잘 들릴 만큼의 쾌적한 곳으로 바뀌면 좋겠다.


 학교를 떠나 교육지원청 장학사로 생활한 지 17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맞이한 이번 3월, 교육청에서도 학교의 새 학년 시작을 돕기 위한 어마어마한 업무로 폭풍 같은 첫 주를 보내고 나니 학교의 3월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수고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3월이 끝날 무렵엔 서로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좋겠다.


수고했습니다 / 박 노 해

3월에는
수고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풀꽃에게도
새싹에게도
이웃에게도

수고는 고통을 받아 안는 것
고통을 안고 새 힘을 선물받는 것

수고했습니다
겨울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힘겨움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느라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