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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나’에서 ‘우리’로 (주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10 13:30
조회
822

주만/ 회원 칼럼니스트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해방에 이은 분단과 전쟁, 지금까지 이어온 남북 대치. 한반도의 지난 70년은 갈등 그 자체였다. 
TV 생중계로 지켜본 15만 평양 시민 앞 남한 대통령의 연설 현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고 존엄’에게만 충성해야 하는 줄 알았던 북한 인민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남한의 지도자에게 갈채를 보냈다. 남북이 상투적으로 보여 왔던 치열한 기싸움도 없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남북이 대치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였다.


 어느 한쪽이 승리해야만 끝날 것 같았던 길고도 깊은 갈등. 하지만 능라도에는 의기양양한 승자도, 비참한 패자도 없었다.


 대통령을 찬양하거나 이념 대립을 원하는 글은 아니다. 그저 그날,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현장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범답안도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갈등의 현장은 입으로 싸우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갈등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인권이었다.


 ‘나는 특별하고 귀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사회적 갈등과 막막한 나의 삶의 탈출구가 되리라 여겼다.
 갈등 상황을 마주하면 인권으로 포장한 나의 신념을 외쳤다. 잘못된 것이라 판단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나 때문에 누군가 불편한 상황에 놓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나처럼 자신의 신념을 마음껏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은 힘들어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긴장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예민해진 분위기에 대부분 피곤해 했다. 어차피 내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하고는 화제를 돌리거나 말을 아끼는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불만스러웠다. 나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고민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욕심. 은근한 우월감. 어느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그리고 누군가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념끼리 대결해 한쪽이 승리하면 갈등이 해소될 거라는 생각은 잘 들어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권이라는 좋은 가치로 오히려 불편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내 모습에 절망했다. 무엇이 나를 갈등 해소는커녕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좌절했던 나에게 그날 연설은 말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폴리뉴스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의 연설에 ‘나’는 없었다. 온통 ‘우리’로 가득했다. 반대로 나의 신념에는 ‘우리’가 없었다. 오직 ‘나’만이 가득했다. 승자가 되려는 싸움 없이, ‘우리’라는 말과 함께 갈등이 해소되어가는 현장을 보고 알게 되었다. 갈등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이미 읽었던 인권 관련 서적들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제야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가 보였다. 인권 안에서 ‘우리’는 ‘나’만큼 소중했다.


 분명 모든 사람의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올바른 원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 승자가 되길 원하며 갈등을 지속했다면, 그날과 같은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나는 나의 신념이 반드시 승리하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접어두려 한다. 어느 한쪽의 소신이 승리해야 하는 전쟁 같은 세상보다는, 나의 소신과 다른 이의 소신이 화합할 수 있는 감동적인 세상을 추구할 것이다. 풀릴 것 같지 않던 남북 간의 갈등이 ‘우리’라는 가치를 통해 해소되어가는 것처럼, 내 주변의 갈등들도 ‘우리’라는 가치로 해소되길 기대하며.


주만: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작가 지망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