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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불편해도 꺼내보는 이야기 (김현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5-23 11:14
조회
1287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인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지 4년째 되는 나는 그야말로 인권꿈나무이다. 그런데 인권을 알게 되면 피곤하고 고급지게 영생할 수 있다는 조효제 교수님의 말처럼, 나도 그 길에 들어선 듯하다. 어떤 현상을 봐도 그 기준을 ‘인권’으로 삼는 나 자신을 보면 참 놀랍기도,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참 매력적이라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덕분에 학교의 풍경들을 인권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학생들을 대하는 말과 행동을 인권친화적으로 바꾸고 참 행복한 교사로 살 수 있었다.


 나는 2016년도에 강원도교육청의 의뢰로 실시한 학교인권실태조사를 위해 인터뷰어로 참여하였고, 특성화고의 인권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모 특성화고교에 가서 학생과 보호자들을 만났다. 예전에 출퇴근하며 또는 업무차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학교의 모습(어두컴컴하고, 덩치가 산만한 남학생들이 1300여명이 다니는 학교)을 떠올리며 방문했는데, 실제로 내가 만난 학생들은 생각보다는 밝은 표정이었다(어쩌면 이것도 내 안의 또 다른 편견일 수 있다). 인터뷰에 참가한 학생들은 그 학교 전공과목 중, 상위 성적의 전공과 학생들이었으며 그 과는 일종의 특례가 적용되는 과였다. 특례의 내용은 그 과를 졸업하고 하사관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2016학년도에 그 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매우 높은 성적의 지원자가 몰렸고, 100명 이상이 불합격했다고 전해 들었다.



사진 출처 - 경기교육


 고교 입학 성적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 친구들은 일반계고에 지원해도 별 ‘문제없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면접에 참여한 학생 모두에게 ‘왜 이 학교에 진학했냐?’고 물으니 취업난을 고려해서 지원했다고 답했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대학에 가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공부를 하느니 취업을 빨리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 지원했다는 매우 세밀한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A고를 다닌다고 하면 뭐라고 하느냐?’란 질문(특성화고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학생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기 위해 질문했다)에 학생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음……. 뭐라고 특별히 말을 하진 않는데요, 그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의미에요?”
 “음……. 특성화고 다닌다고 하면 바라보는 그 시선이 있어요.”
 “네?”
 “제가 다니는 교회에 우리 학교에 합격했다고 했더니, 어른들이나 선배들이 저를 되게 안쓰럽게 바라보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친구가 밝은 목소리로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취직하기 어려운데 참 대견하다고 해요.” 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특성화고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1학기가 끝나면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이것도 전망이 좋은 과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부터 순서대로 나간다. 전망이 좋은 과 소속이라고 해도, 자기 전공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실습을 하게 되면 다행이다. 그러나 몇 년 전 모 특성화고 인터넷 비즈니스과 전공학생이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 취업했다가 그 곳의 폭력적 분위기와 구타 그리고 강도 높은 노동을 견디지 못한 끝에 자살한 사건(거의 묻혀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을 보면 비단 좋은 전공학과라고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적이 우수하다고 원하는 곳에 실습을 나간다고도 볼 수 없다. 그렇게 죽은 학생에게 ‘그렇게 의지가 약해서 밥은 먹고 살겠니?’라는 댓글만 달리지 않아도 꽤 괜찮은 사회이다.


 모 특성화고의 보호자들을 면접할 때 들은 어느 보호자의 건의사항이 떠오른다.
애들이 실습 나가기 전에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보호자의 얘기에, “노동인권교육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했더니.


 ‘네, 그게 그거 맞죠? 실습 나가서 죽었다는 애들 기사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면 너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 말고, 그들이 만날 노동현장의 현실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와 사회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친구들은, 정말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이스터고를 밀어붙인 그 권력자가 마이스터의 의미는 알고 그랬는지는 의심이 되지만.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