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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을이 보내준 용기 (김시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2-20 18:38
조회
1049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번이 두 번째 퇴사이다. 이번 퇴사는 이미 예정된 터였다. 유아휴직 대체근로로 약 10개월 기간을 계약하고 입사하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직장에서 평생직장이었으면 했던 막연한 꿈이 상실되어서 그런지, 두 번째 퇴사는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박사학위 논문을 순전히 내 힘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내 자신 뿐이다.


 두 번째 직장은 첫 번째 직장과는 달리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 수직적인 관료제는 커녕 대다수 임원들이 일반 직원들을 수평적으로 대한다. 또한 시차변형 출근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유연하여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직장에서는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학위 논문을 마치면 논문을 마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직장은 계속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을 무너뜨린 것은 지난 연말에 있었던 논문 심사와 관련 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내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살피는 지도교수의 ‘태도’를 경험하면서, 논문을 끝내지 않으면 기약 없이 지도교수에게 질질 끌려 다닐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칼럼을 통해서 지도교수의 태도를 고발하고 더군다나 험담하겠다는 의도는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오히려 학풍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내가 겪은 일은 기록하여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왜 지도교수는 학생이 논문을 검토해달라고 지난해 5월부터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을까? 그리고 항상 자신의 시간에만 맞춰서 그리고 자신의 일정에 따라 아무 소식도 없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지도교수 역할이 논문 심사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었더라면 미리 언질을 해주든지, 또는 당신이 1년 동안 연구년이기 때문에 지도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지도를 할 수 있도록 위임을 하든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 논문심사 위원회가 구성되고 심사 위원장님과 다른 심사위원님들의 배려로 지도교수 없이 논문 심사 날짜가 잡혔다. 지도교수가 연구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이 허무하게 날려버릴 뻔했다. 그런데, 막상 심사일정이 잡히니까 미국에 있는 지도교수는 심사 전날이 되어서야 코멘트를 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방학동안 펑펑 놀던 초등학생이 밀린 방학숙제를 처리하듯이. 그런 코멘트는 지도교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보낼 수 있었던 거였다. 그나마 심사 당일에 받은 코멘트조차도 완전한 코멘트는 아니었다. 이렇게 기를 쓰고 종심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코멘트인가? 결국 작년에 딱 1번 코멘트를 받았다.


 지난해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대학원생은 몇 달 전에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대학원생이 그렇게라도 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 대학원생의 지도교수는 질책이라도 했지. 나의 경우는 ‘방치’다. 하지만 학생이 끊임없이 요청하는 것에도 약 10개월 동안 반응하지 않다가 심사 일정이 잡히니까 바로 전날에 반응하는 지도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코멘트는 일종의 ‘공격’인데, 나에게 전혀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안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 왜 이렇게 못 싸우니?’ 하지만 난 어디에서도 항변을 할 수 없었다. 실컷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구석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애초에 입학할 때 물어야했을 물음을 묻는다. 대학원은 과연 어떤 목적을 지닌 걸까? 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다. 학생은 대학원을 유지하고 교수 월급을 유지시키는 상품이 아니다. 적어도 학교 본연의 기능인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닐까? 먼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을 사람을 키워내는 기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교육기능을 토대로 박사과정 학생과 지도교수가 ‘연구 동료’가 되어서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전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토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사과정 학생만 죽어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교수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몇몇 동료들에게 내가 지난 연말에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네가 참어’, ‘원래 그래’, ‘조심해. 괘씸죄에 걸려서 학위 못 받을 수 있어’, ‘원래 지도 교수는 지도 안 해’ 등의 대답이 일반적이다. 내가 기대하는 대학원과 현실의 격차가 참으로 크다. 옛말에 제자는 학문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지 않나? 하기야 요즘 세상에 학문하는 교수를 찾은 내가 바보 같다. 물론 순수 학문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실무적인 논문을 지향했지만, 지도교수는 실무적인 논문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10개월을 흘려보냈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원고를 써서 봐달라고 아무리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지도교수가 전화하면 연말·연초에 바쁜 업무 다 제쳐두고서라도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무례한 학생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코멘트를 단 1번이라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게 생각해야 하고 박사과정은 지도교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심리적 주눅이 깔린 분위기 속에서 내 안에서 자책감만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자책감이 무서운 사실은 애초에 내가 품었던 연구 열정이 사라지도록 만든다. 아이러니다. 대학원은 연구열정을 키워주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은가?


출근길에 우연히 찍은 사진
사진 출처 - 필자


 퇴사가 한 달이 채 남지 않던 출근길에 뜻하지 않은 플랜카드를 보았다. 사실 어릴 적부터 무난하게 성장해오고 부모님도 나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셨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일정이 휘둘리는 경험을 못한 탓일까? 그래, 내가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반성한다. 그동안 ‘갑질’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를 진심으로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갑질’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깊게 후비고 지나간다. 학생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안위만 급급하게 챙기는 지도교수의 ‘태도’가 갑질이다. 이 갑질은 비단 나의 지도교수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갑질은 노사관계와 더불어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있고, 대학원의 현장에서도 만연된 문화이다.


 플랜카드를 만드신 을께서 보낸 메시지는 내 안에서 천둥처럼 울린다. 지도교수 앞에서 끽 소리 할 수 없는 을 중의 을, 나는 대학원생이다. 플랜카드에서 보여준 을이 보내준 용기에 힘입어 나도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한다. 갑질에 굴복하여 논문을 관두는 것이 아니라, 갑질과 싸워 승리하고 싶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오래된 격언을 믿으며 직장인이란 옷을 벗고 오로지 대학원생이 되어 펜을 들고 일상에 숨어있는 갑질과 싸우련다. 내가 겪은 갑질은 끝나야 하니까.


김시형 : 윤리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이해하는 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