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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이분법 (방효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2-13 17:12
조회
1385


방효신/ 회원칼럼니스트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실이나 강당으로 이동할 때, 아이들은 복도에 두 줄로 선다. 이 때 선착순이냐, 출석번호 순이냐, 키 순서냐 하는 것으로 따지고, 서로에게 "뒤로 가라" 말하고 담임 교사에게 "저 어디 서요?" 묻고. 이렇게 줄서는 것 자체가 싫어서 줄 밖에 서 있기도 한다. 교사마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거나 위 3가지를 혼용하는데,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똑같은 기준이 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이다. 일 년 동안 바뀌지 않을 기준일테다.


 작년 이맘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사 생활 12년 만에 남녀 구분 없이 준비되는 대로 두 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이 방침에 적응하기까지 반 년이 더 걸렸다. 특정 시간에 다른 교사가 지도할 때, 성별을 구분짓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종종 있다. 해당 교사가 학생 이름을 못 외웠거나,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가 목적이라면 남녀 구분은 쉽게 적용된다. NEIS라는 반별 인적사항 등록에 출석번호가 1번부터 남자, 51번부터 여자인 것도 한 몫 한다. 어제 전교생 음악발표회에서 반 별로 연주하고 관람하는 시간에도, 우리 반은 남녀 구분 없이 도착하는 대로 앉았다. 어느 반이 연주한 뒤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이전 반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옆 줄에 앉았던 이전 반 아이들은 '원래' 자기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남자 줄을 찾고, 키가 크면 뒤에 앉으라고 했으니 철수 뒤에 영식이, 이런 식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제 때 앉지 못한다. 비효율적인 성별 구분이라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걸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 옆에 앉으려 한다. 그 이유는 경험이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도, 옆자리에 앉으면 "너네 사귀냐?"고 놀림 받을 수 있어서 피하는 게 상식이다. 교사들이 굳이 남녀로 짝지어 앉히거나, 줄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 실은 '지금까지 그래와서'겠다.


 사회 교과서 2단원 제재 중 양성평등에 대해 수업하면서 물었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 아이의 즉석 제안이 있었다. "여자 대 남자로 대결하자!"
사진 출처- 필자


 "내가 여자구나 또는 남자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


 (이하 아이들) "화장실 갈 때요." "제 몸을 보잖아요, 그럼 제가 남자인 걸 알겠어요." "앉아서 볼 일 봐요." "수영장 갔을 때, 여자는 저 쪽 가라고 했어요." "선생님, 근데 왜 남자는 치마 못 입어요?" "야, 입어도 돼." "아무도 안 입는데?" "남자는 왜 머리 못 길러요? 저도 머리 기르고 싶은데, 엄마가 자르래요." "아, 군대 가기 싫다! 군대 가면 머리 다 깎아야 돼." "저는 머리 자르고 싶은데, 여자는 머리 길어야 예쁘대요." "근데 우리 중학교 때 상명여중 가죠?" "중학교 가면 교복입어야 돼. 치마 입던데." "남자들은 청운중 가."


 성별 이분법으로 가르쳐서, 이 사회에 일찍 적응시키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은 성별 구분이 차고 넘친다. 성별을 구분지어 말하는 분위기일수록, 남자답게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그 말을 듣는 남녀의(여남의) 스트레스도 높을 것이다. '~답게' 라는 말이 죄여오는 부담감을 생각해보라. (예: 선생답게, 학생답게, 가장답게, 첫째답게) 한국은 성평등지수  118위인 나라(세계 144개국 중,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11.1. 발표) 이다. 여자가 여자답게 살아도 취직도 잘 되고, 월급도 똑같이 받고, 임신해도 직위를 유지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부서 회식을 주도해야 하거나, 승진을 포기한 못난 놈 취급 안 받으려고 육아 휴직을 1개월도 못 써본다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사는 세상일까? 주어진 성별에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한국. 2018년에는 성별 구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성별과 관계없이 행동하고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