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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학교 가는 길 (조예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1-09 10:17
조회
754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보통 5년을 기준으로 공립학교 교사는 학교를 옮긴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대중 교통이 조금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한 번 환승한 다음 광역 버스를 타고 난 후 10분 정도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역 버스의 배차 간격이 넓어 25분 이상 기다리는 날이 종종 있는데, 이럴 때는 여러 번 환승하더라도 최대한 지하철로 학교 가까이 내린 후 일반 버스로 갈아탄다. 환승 정류장이 멀고 학교까지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진을 빼기도 하지만 왕복 2시간 남짓의 출퇴근길에 많은 사람과 풍경을 만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다. 아침 일찍은 대부분 닫혀 있지만 몇 군데 문을 연 가게들이 있다. 떡볶이 집 사장님은 반조리된 튀김을 상자에서 꺼내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튀기신다. 퇴근길에 한 번 사먹어 봐야지 하는데, 저녁이 되면 학생들이 많아 늘 지나치게 된다. 경비원 옷을 입은 인상 좋은 남자 분은 월세가 비싸 보이는 오피스텔 건물의 앞마당을 긴 빗자루로 날마다 쓰신다. 오피스텔 바로 앞뿐만 아니라 도로 저편의 쓰레기까지 치우신다. 맡은 일은 얼마나 많을까, 쓰레기 때문에 민원에라도 시달리시는 것은 아닐까.


  광역 버스에 오를 때는 긴장을 한다. 자리에 앉지 못하면 30분 넘게 서서 가야 하므로 아침 7시가 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리 다툼이 치열하다. 안전 문제로 광역 버스에 대한 말은 많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전철이나 버스나 일단 한 번 자리에 앉은 사람은 대부분 눈을 바로 감는다. 그 얼굴에서 전날의 피로가 묻어난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아침마다 만나는 어느 남자분은 한 번도 눈을 뜬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꽤 장거리를 타고 가시는데 깊은 잠에 빠져 늘 코를 고신다. 퇴근길일까, 출근길일까.


  학교에 가까운 전철역 근처에는 패스트푸드 가게가 있다. 한동안 학생이나 직장인이 아침을 가볍게 때우는 장소의 느낌이 컸다. 최근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무슨 메뉴를 시키실까 슬쩍 보다가 다시 거리로 시선을 돌리면 리모델링하는 가게가 눈에 띈다. 새로운 가게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다. 어? 여기가 원래 무슨 가게였지? 빵집 옆이고 신발 가게 앞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장님은 왜 가게를 그만두었을까? 좋은 가게터로 옮기는 것이면 다행인데, 눈물 꽤나 쏟으며 가게를 접으신 것은 아닐까. 자녀들의 학비는 해결되었을까. 요즘 부쩍 폐점하는 가게가 많다. 단골 가게가 문을 닫으면 내 추억까지 가져가는 기분이다.


 

20171107web06.jpg


사진 출처 - 필자


 

  학교 가는 길, 사람과 풍경을 만난다. 물론 내 고객인 학생들도 만난다. “쌤!!” 하고 거리에서, 버스, 지하철에서 나를 부른다. 거리에서 인사를 하면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기 때문에 조금 창피하다. 종종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발랄한 그들을 볼 때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살아 있는 그들이 고맙다. 얘들아, 밖에서 샘 보면 그렇게 큰 소리로 인사 안 해도 돼. 그리고 학교에서 반갑게 보자.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