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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하와의 마지막 유혹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0:33
조회
31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1997년 12월 30일.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두고 있던 그날을 떠올리면,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 어드메가 무거워 온다.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전국의 5개 구치소에서 23명의 생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이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몇몇 종교위원들과 서울구치소를 찾은 그날 풍경은 지금도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충격이었다. 전날 사형이 집행된 네 사형수의 시신이 든 검은색 관이 구치소 뒷문을 빠져나올 때마다 곡소리가 겨울 하늘을 찢었다. 쓸쓸한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싸라기눈이 관 위로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곡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훔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 한켠이 아려 숨을 삭이느라 손놀림까지 더디다.


  그날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20년이다.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뤄진 그날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7년 12월 30일, 우리나라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실질적 사형폐지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전 세계에서 134번째로 사형폐지국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사형제도가 존치하고 있어 우리 사회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사형제도 존치 여부가 인권 선진국의 가늠자가 되고 있지만,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인식조차 멀지 않은 시간, 어렵게 이뤄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상상 가능한 것처럼, 엄혹한 군사독재 시대에는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것만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자임하는 일이었다. ‘사형 폐지’라는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판이었다. 이런 흐름이 분수령을 맞은 것은 1987년 ‘6월 항쟁’ 때였다. 숨통이 트인 광장으로 나선 뜻있는 이들이 1989년 5월 30일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창립을 이뤄내면서야 이 땅에 사형제도 폐지를 향한 물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형폐지운동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2001년 1월 19일 가톨릭을 비롯한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7대 종단 지도자들이 망라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 발족하면서다.


  이후 범종교연합은 우리나라의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이끌며 국내외 인권단체 등은 물론 정부기관, 국제기구 등으로 연대의 폭을 넓히며 생명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제15대 국회(1996~2000년) 때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매 국회 때마다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이 발의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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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필자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사형제도 존치는 물론 당장 사형을 집행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교리’로서 사형을 반대하는 종단 신자들마저 앞장서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적잖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인류를 원죄에 물들게 한 하와의 마지막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혹은 대체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 복수, 왜 아까운 돈으로 짐승을 먹여 살리느냐는 경제적 접근, 위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 이성에 대한 몰이해, 또는 무지에서 비롯된 바 크다.


  “생명의 권리는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인권의 필수 조건이다…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모든 순간에서 그리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하든 불구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이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


  어느 시대든 그 시대가 뛰어넘기 힘든 한계가 있다. 우리 시대에는 사형제도가 그것이다. 그 필연을 뛰어넘지 못할 때 100여 년 전 노예제도에 묶여, 신분제도에 얽매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나가지 못했던 선조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암흑의 시대에 균열을 내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들의 조그만 몸짓이다. 사랑 어린 실천이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