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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공장 논란을 바라보며(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4-14 16:08
조회
1348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뒤 언론계의 관심사 중 하나는 오세훈 시장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오세훈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교통방송은 시사가 아닌 교통정보와 기상에 집중하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선거 전날 뉴스공장은 오세훈 후보와 박형준 후보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90분 내내 진행하면서 편파성 논란에 정점을 찍었다. 국민의 힘은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방송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교통방송에서 김어준씨를 퇴출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이십만 명이 넘게 참여했고 앞으로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총공세에도 김어준은 여전히 “쫄지마!”를 외친다. 졸긴커녕 선거 다음 날 방송에서 "('뉴스공장'이) 마지막 방송이길 바라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게 어렵다"며 여유를 보였다.


 라디오에서 아침 출근시간대 시사프로그램은 핵심 시간이다. 가장 핫한 이슈와 인터뷰이를 놓고 날마다 치열한 섭외경쟁을 펼친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김현정의 뉴스쇼는 10여 년 전부터 당사자 인터뷰로 본격적인 라디오 시사의 장을 열었고 여러 채널에서 아침시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의 노골적인 압력으로 손석희씨가 하차하는 등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은 한때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가 시사프로그램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여기서 활약한 주인공들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필두로 지상파에 대거 진출, 라디오 시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2016년 9월에 시작한 뉴스공장은 1년 만에 청취율 10%대로 올라섰고 2018년부터는 컬투쇼를 제치고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딴지일보와 나꼼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어준은 형식과 가식을 던져버린 적나라함과 유쾌함으로 이를 이뤄냈다. 정색하는 시사가 아니라 풍자와 해학, 위트까지 곁들이면서 시사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청취율 1등인 동시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도 가장 많이 받았다.


 라디오의 입장에서 보면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성공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우세 속에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라디오의 가능성과 시사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방송의 객관성과 중립성이 흔들린 점은 분명 위기다. 청취율을 위해서는 정치적 팬덤에 올라타는 것이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사실 청취율에 목매는 방송사로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공정성과 객관성 이런 개념은 어떻게 보면 방송사에겐 족쇄일수도 있지만 방송이 엇나가지 않게 하는 준거이기도 했다. 이 틀을 벗어던지는 순간 자유를 얻을지언정 신뢰는 흔들릴 수도 있다. 제도권 방송, 그중에도 레거시 미디어에 너무 오래 몸답고 있어 내 생각이 고리타분하다고 하겠지만 신뢰가 무너진 방송이나 언론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잘 나가는 게 배 아프기도 하지만 고마운 마음도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시장 전체가 활성화되고 전체 파이가 커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늘 떠나지 않는 걱정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서울시장이 바뀐 후에도, 뉴스공장이 지금처럼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는 뉴스공장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른바 공영방송에서는 일상화된 문제이기도 하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은 논조와 색깔이 확확 바뀐다. 어떨 땐 너무한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이 정상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정상인지, 과연 이런 논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 늘 궁금하다. 해묵은 숙제 같은 수신료 논란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정권마다 방송의 색깔이 바뀐다면 공영방송이라 이름 붙이긴 어렵지 않을까. 그만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방송의 공영성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요즘 같은 대명천지에 ‘편파’라는 이유로 방송을 퇴출시킬 순 없다. 이런 기준을 들이댄다면 종편도 벌써 서너 개는 퇴출됐어야 마땅할 것이다. 방송사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편성권은 독립되어 있어 함부로 입김을 불어 넣을 순 없다. tbs는 지난해 2월 서울시 미디어재단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인사나 재정을 통해 시장이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어렵다. 법으로 보장된 방송의 독립성이 뉴스공장에 든든한 방패막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뉴스공장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자동적으로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김어준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음모론이나 정치적 편향성을 정당화해주지도 않는다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오세훈 시장도 국민의 힘도 뉴스공장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뉴스공장을 손보지 말고 그냥 두자는 일부 보수의 비아냥거림이다. 그냥 내버려 둬서 내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엑스맨 역할을 하도록 지켜보자는 것이다. 상소문 형식의 국민청원 글로 유명해진 ‘진인’ 조은산은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로 갈등과 분열의 정치, 극성 친문 세력 놀이터에 불과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과대평가, 국민 과소평가를 들었다. 한 논객은 뉴스공장을 나치의 선전방송에 빗대기도 했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라디오의 대표 프로그램이 정권의 엑스맨 취급을 받고 정치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지탄을 듣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의 세금을 왜 교통방송에 지원해야 하냐는 질문은 나올 수밖에 없다. 청와대 게시판의 청원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팟캐스트가 아니라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방송이기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정치적 올바름이나 정파성이 아닐 것 같다. 막연하고도 케케묵은 골동품 같지만, 공정성과 객관성이란 단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무엇이 객관이고 무엇이 공정인지에 대한 기준이나 주장은 다를 수 있다. 정해진 답도 없고 각자의 기준도 다르기에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공중에 떠도는 전파처럼 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만이 맴돈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