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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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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흩어져야 산다, 지역은 뭉쳐야 산다(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1 16:56
조회
887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51초에 인구 1명씩, 1년에 60만명이 태어나는 대한민국은 어떤 느낌일까. 연간 신생아가 30만명 밑으로 떨어진 요즘에는 ‘60만명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반응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1983년 대한민국 위정자들은 ‘큰일이다.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자고 하자’는 반응을 보였다. 30여년전 대한민국은 그만큼이나 2020년과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흔히 1970~80년대 가족계획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정책 가운데 하나로 기억한다. 사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와 함께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저출산 시책은 너무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하지만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게 오로지 가족계획 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출산율 추이를 보면 사실 가족계획을 시작하기 전부터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었다. 의무교육 확대와 맞물린 교육열,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출산율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1970년대는 괜찮다. 진짜 문제는 1980년대였다. 이미 1980년대가 되면 출산율 하락은 너무나 명백하게 급격해지고 있었다. 사실 이 즈음해선 가족계획을 폐기하고 적절한 출산율 유도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로의존성’이란 언제나 무섭기만 하다. 당시 정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며 가족계획 고삐를 더 죄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세우는 2005년이면 이미 한국은 학자들이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수준이 돼 버렸다.


 옛 고사에 이런 게 있다. 신통하다고 소문난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사는 자신이, 모두 의사인 세 형제 가운데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큰 형은 사람이 아프기도 전에 미리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처방을 해주고, 둘째 형은 초기에 완치시키는 반면 막내인 자신은 병이 한참 진행된 뒤에나 겨우 치료한다는 것.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큰 형과 둘째 형이 훌륭한 의사라는 것을 깨닫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의사 형제들 얘기를 정부 정책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서둘러서 하면 졸속행정이요, 신중하게 하면 늦장행정이라고 욕먹는 게 일상다반사이긴 하지만 외국 가본 사람이라면 한국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한국 공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곤 한다. 확실히 한국 정부는 일은 잘한다. 하지만 상황에 대응하고 선두주자를 추격하고 앞선 제도를 도입하는 건 잘하는 반면, 미래를 대비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면은 확실히 약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소득주도성장을 외치고 나중엔 혁신성장을 외치더니 요즘은 한국판 뉴딜을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외치는 뉴(NEW)딜이라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고, 어차피 하던 갖가지 개발사업에 이름표만 거창하게 붙여서 정이 안 간다. 김영삼 정부 ‘세계화’, 김대중 정부 ‘벤처기업’, 노무현 정부 ‘일자리’, 이명박 정부 ‘녹색’, 박근혜 정부 ‘정부3.0’ 등 정부가 내세우는 시책에 따라 호박에 줄 긋는 행태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런 와중에도 봐줄만한 건 지역균형뉴딜을 활용해 광역경제권 구상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으로 몇해 전부터 주창하면서 조금씩 소문이 난 이 구상은 지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함을 반영할 뿐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 제기하는 의제가 국가의제로 확산된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지역개발구상과는 결을 달리한다. 물론 아직까지 국가전략 차원으로 확산된 건 아니지만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논의의 밑바탕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마당에 인구감소로 지역소멸까지 걱정할 정도로 위기에 몰려 있다는 현실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권역별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행정구역과 경제권을 통합하자는 논의로 분출하는 셈이다. 전국에서 수도권 면적은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청년취업자와 사업체 모두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100억원 이상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161개 가운데 149개(92.5%)가 수도권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출처 - KBS


 권역별 메가시티 구상은 작은 단위로 쪼개진 행정구역을 뛰어넘어 규모를 키우자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령 부산·울산·경남 800만 인구를 뭉쳐 주민센터 등 행정체계는 물론 대중교통망과 교육시스템 등도 인구감소에 맞게 효율화하고, 산업정책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 한 광역지자체 기획조정실장은 “어떤 면에선 구조조정 대상이 먼저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면서 “중앙정부 지원만 바라보며 시․도간에 싸워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지 않겠느냐”고 표현하기도 했다.


 행정구역 통․폐합은 사실 오랫동안 정부 차원에서 논의했던 주제다. 하지만 실제로는 1995년 지방자치선거 직전 도농통합을 했던 것을 빼고는 지지부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도했지만 2010년 경남 창원시, 2014년 충북 청주시 등을 빼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명박은 미워도, 행정구역 통합 구상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었다(물론 구체적인 추진과정은 엉망진창이었다).


 메가시티와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사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구상이다. 그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초광역권을 중심으로 한 균형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국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맞짱’을 뜰 만한 지방 대도시들을 키워야 한다”면서 “17개 광역지자체를 7개 초광역 지자체로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 중심에 인구를 모으는 ‘압축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