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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즐거움(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7-24 16:26
조회
465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축구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내가 나이 40이 다 되어 처음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이다. 운동장 사정으로, 혹은 안식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쉰 기간도 있지만 대체로 주 1회 축구라는 리듬을 거의 지켜왔다. 요즘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시간에 운동장에 나간다.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 게으르고 무능한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축구를 놓지 않고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축구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학교 교수와 강사,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다. 학기 중에는 젊은 학생들과도 자주 함께 한다. 축구 실력은 들쑥날쑥 개인차가 많지만 그래봤자 동네축구다. 축구인지 농구인지 헷갈릴 정도의 스코어가 예사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몸치도 가끔은 슛을 하고 골을 넣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 옛날 동네 형들과 놀 때 어느 팀도 원하지 않는 깍두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입장에서 이건 엄청난 변화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건강에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좋은 걸 한창 젊을 때는 왜 안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다.


 운동장 밖의 구경꾼으로 보는 세계와 직접 몸으로 뛰면서 느끼는 세계는 다르다. 당연히 운동장 밖의 일상에서 형성된 관계와 운동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학생들과 함께 뛸 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는 선수와 선수라는 좀 더 대등한 관계로 바뀐다. 적어도 몸과 몸을 부딪치며 운동을 할 때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 부여된 권력 관계는, 물론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희석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운동장에서 생성되는 관계는 일상 속에서 규정되는 관계를 새롭게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는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사회관계를 연습할 수 있는 장이다. 게다가 직접 축구를 하게 되면서 월드컵이나 프로 축구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저 구경꾼의 눈으로 보던 때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사진 출처 - 구글


 최근 문화부의 스포츠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스포츠 혁신 권고안 가운데 스포츠클럽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는 건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역과 세대를 넘어 어디서나 스포츠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각종 스포츠클럽이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이 권고안의 요지다. 이 권고안은 또한 그동안 학교 체육을 통해 스포츠 엘리트를 육성해 오던 데서 벗어나 스포츠클럽과 학교 체육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발표된 스포츠 혁신위의 권고안에는 이 외에도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성폭력 등 인권 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 등 여러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 진작 실행되었어야 할 당연한 일들이다. 그런데 스포츠 혁신위의 이런 권고들에 대해 반발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당장 눈에 띄는 반발이 ‘그러다가 국제 대회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올림픽에서 메달 못 따면 어떡하나’ 같은 소리들이다. 이에 대해 ‘우리보다 앞선 스포츠 강국들이 이미 이렇게 하고 있고 오히려 이렇게 바꾸어야 장기적으로 국제 수준의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엘리트 체육에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왔고 그 결과 어떤 의미에서는 국력에 비해 과도한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올림픽을 봐도 미국과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의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만큼 메달 많이 따는 나라도 없다. 월드컵 16강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목표가 되었고 심지어 4강에 오른 적도 있다. LPGA의 상위권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국가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적 자부심은 커졌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졌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이래 1인당 GDP니 경제성장률이니 하는 수치들은 국민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주술적 힘을 발휘해 왔다.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고 경제성장률이 얼마가 된들 나 자신의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국가 대표 선수들이 국제 경기에서 금메달을 얼마나 따는가 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 메달 수에 연연하기보다 차라리 동네 축구의 묘미를 느껴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한 건 우리들 각자의 삶의 질과 건강이 아닌가 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