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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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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악플러가 황교안 전도사님께(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20 18:05
조회
1101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황 전도사님, 제가 제1 야당 대표이신 분에게 이렇게 전도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례는 아니겠지요? 스스로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전도사임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에서도 굽히지 않고 꼿꼿한 태도를 보이신 것만 봐도, 한 정당의 대표임에도 개신교 전도사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그 내면의 신앙이 얼마나 강건한 분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불자도, 무슬림도 아니고, 학창시절 잠시 교회를 다녀봤을 정도의 제가 전도사님께 감히 종교적인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낱 필부인 제가 이 나라의 공안검사, 법무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지내신 분에게 무슨 국가 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전도사님께 이렇게 말씀을 올리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렵게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다시 담배를 입에 댈 뻔했다는, 뭐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각설하고,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악플러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그것도 개점휴업에 가까운 업장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나면 조용히 앉아 미래를 위한 공부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당시 저는 이명박 관련 기사가 보일 때마다 그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그 졸렬하고, 파렴치하며,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후안무치한, 천박한, 기만적인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야만 마땅한 행태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뭐가 그렇게 졸렬~기만 등등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여러 모로 바쁘신 분이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인터넷 기사에 처음 댓글을 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저 눈에 띄는 기사에 점잖게 한마디 붙이곤 했습니다. “어허 당신들이 그러면 안 되지, 인간이라면…” 정도의 수위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잖아. 똑바로 해, 이놈들아!” 같은 말투가 되어갔습니다. 일과의 대부분을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다는 일에 허비하게 되면서 저는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제 말투는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야이, 개@@! 이런 씨%%%! 카악 퉤!” 같은 욕설 반, 배설 반인 댓글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 한 분이 저에게 ‘왜 그렇게 화가 많은 얼굴을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며칠 후, 저는 제가 쓴 댓글들을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6개월 가까이 미친 듯이 써 붙인 댓글들을 하나하나 지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추천수가 많은 댓글을 지우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까운 것은 악플을 다는 시간과 그걸 지우는 시간, 제가 홀리듯이 허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저는 맹세코, 단 한 번도 인터넷상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가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니까 대략 10년 가까이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구속될 때에도 저는 댓글을 달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어제 부산발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그만 애써 쌓아온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뻔했습니다.


… 특히 황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 임금과 관련해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가치는 옳지만, 형평에 맞지 않는 차별금지가 돼선 안 된다”며 “내국인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등 우리나라에 기여한 분들로, 이들을 위해 일정 임금을 유지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은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왔고 앞으로 다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


 기사를 읽자마자 저도 모르게 로그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댓글로 한마디 해야겠다고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기사에 댓글은 달지 않았지만 제가 다시 악플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2년 반 동안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다음 날 아침, 전날 입었던 점퍼 안에 담배 두 갑이 편의점 영수증과 함께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친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황교안 전도사님,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제가 다시는 악플러가 되지 않도록, 더 이상 쓸데없는 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비록 제가 아무 종교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전도사님께서는 분명 기도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독교에 대해 거의 무지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신: 만약 댓글을 달았다면 어떤 내용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평, 차별, 노동, 임금 등의 이야기 끝에 결국 세금 이야기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황교안 전도사님께서 만났던 전광훈 목사님은 종교인과세법에 의거 얼마나 세금을 내고 계신지 그에 따라 얼마나 ‘국민의 의무를 다해 왔고 앞으로 다할 것’인지…. 하마터면 욕설까지 섞어가며 악플을 달 뻔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