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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15 13:44
조회
177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유시민 작가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는 말을 들었다. 진보적 민주 인사가 가당치도 않은 행태를 보이는 제1야당의 대표를 그렇게 표현했다는 게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브로맨스’인가 싶어서 발언의 배경을 찾아봤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11일 오후 대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의 토크콘서트에서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은 사회자 노정렬씨가 “자유한국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에 190만 명 이상이 참여하자 한국당은 그 배후에 북한이 있다며 색깔론을 제기한다. 국민들은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고 질문하자, 유시민 이사장은 “(그 사람들은) 북한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북한 없으면 뭐 먹고 살아요?”라고 되물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노 대통령이 지금 살아계셔서 요즘 제1야당 당대표와 원내대표, 특히 당대표가 하는 걸 보면 ‘어허~ 20년 전 공안박물관이 살아났네’ 하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며 “그 분(황교안 대표)은 여전히 공안검사다. 정치하시는 분이 어떤 정당을 해산시킨 것을 자신의 최고 큰 국무총리로서의 업적,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업적으로 보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리고는 “저는 그래서 그 분이 정말 이뻐 보이더라. 아우 정말 잘 해 주신다”라며 “그 분은 최소한 어떤 전직 대통령과 달리 거짓말을 하는 분은 아니다. 정직하게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그것을 다 해 줄 수 있는 것 인양 사기 쳐서 권력을 빼앗아 가서 나쁜 짓 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의 제1야당 대표는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니, 유시민 작가가 황교안 대표를 왜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는지 알겠다. 그것은, 황교안 대표가 아직도 공안검사 시절의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좌파타령’이나 늘어놓으며 ‘장외투쟁’을 하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지난 일차원적 언행으로 외려 정부여당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발언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스럽다’ 표현은 ‘우스꽝스럽다’로 바꾸고 싶다. 내가 보기에도 황교안 대표는 여전히 공안검사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보는 게 옳다고 믿고, 그런 냉전 반공주의적 자기생각만큼은 거리낌 없이 토로한다. 황 대표가 며칠 전 부산의 한 아파트 부녀회에서 했다는 발언만 봐도 그렇다. 그는 “지금 좌파는 돈 벌어본 일 없는 사람들이다. 임종석씨(전 대통령비서실장)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인가? 제가 그 주임검사였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즉자적이고도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1980년대 공안검사로서의 자기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런 당당함에는 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된 사람이라면 뉘라도 느낄만한 일반적 자부심도 들어 있고, 공안검사로서의 성공적 경력 덕분에 박근혜정부에서 마침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개인적 성취감도 담겨 있겠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러나 공안검사 경력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일까? 5월 13일자 <경향신문>의 ‘김민아칼럼’에 따르면, “1980년대 공안검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찰이나 안기부의 고문을 묵인하거나 은폐”했다. 또한 지난해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찰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 조작할 기회를 줬다”고 발표했다.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강박적으로 반공을 내걸었던-‘관제(官製) 빨갱이 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던 정권에서 공안검사로서 성실하고 유능했다는 걸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야당 대표가 된 다음의 언행만 놓고 보면, 황교안 대표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권이 아니라 억압하는 정권에서 공안검사로서 출세했다는 사실의 시대적 ․ 역사적 의미를 고심했다거나 성찰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소크라테스는 성찰적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안검사로서 성공적 경력이 안겨준 공리주의적 효용에는 민감하지만 그 시절 공안검사로서 유능함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둔감할 뿐만 아니라, 그는 2019년 ‘지금 여기’의 현실도 ‘우파 아니면 좌파’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분법으로 바라본다. 좌파/우파에 대한 학술적 정의나 역사적 의미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이 자신의 반민족적 전비(前非)를 감추기 위해 민족주의 애국세력까지도 빨갱이로 매도하듯이, 자유한국당의 정파적 이익에 어긋나는 일체의 언행을 습관적-맹목적으로 ‘좌파’ 혹은 ‘좌파독재’라고 규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정체성을 ‘공안 근본주의자’ 또는 ‘우파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시쳇말을 그냥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는 좀 아깝다. 거기에는 일자무식인 사람보다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세속적 슬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실세계라는 책은 너무 크고 복잡하고 가변적이어서 그것의 구조와 의미를 선명하게 혹은 단일하게 언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좌파적이든 우파적이든 하나의 시각으로 선명하게 조감할 수 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비현실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기사도 책을 읽고 거기에 쓰인 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거기서 멀어져가는 시대착오적인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가 될 수밖에 없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