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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한 대학, 더 측은한 교수들을 위한 제언(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1-23 15:59
조회
484

-강사법 개정과 대학, 교수-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그렇게도 기를 쓰고 보내려는 대학의 민낯을 보여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 교육자가 교육을 담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달 중 시행령 예고를 앞두고 있는 강사법의 주인공, ‘시간강사’ 얘기다.
 역사를 공부한 나의 짧은 식견으로 볼 때 몰락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작은 조짐들이 있다. 대개 많은 경우 어리석어서 그 조짐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결국 조짐은 어느 틈엔가 홍수처럼 손쓸 틈도 없을 만큼 커지고, 모른 척했던 ‘생각 없는 자들’을 덮친다. 강사법 개정에 즈음하여 대학과 교수사회가 보여주는, 작태라는 어감으로도 감당키 어려운 타락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상식과 협잡
 음지에 은폐되어 있던 '대학교원 강사'의 참혹한 처우가 공론화되어 강사법 개정이 논의, 추진된 지 30년째다.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표류하던 강사법은, 한해가 저물어가던 작년 11월 들어 강사의 교원신분보장, 처우개선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대학 교육의 30% 이상을 담당하면서 '교원'조차 아니었던 신분, 평균 800만원이라는 연봉 아닌 연봉을 조금씩이나마 정상화, 현실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학 중 임금지불이나 임용조건, 처우 등은 정관이나 학칙에 맡겨져 있어 대학이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법 시행에 즈음한 대학의 대응은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보기 힘든 꼼수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4대보험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강사들에게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면 강의초빙교수로 채용해주겠다고 제안하거나, 학부 졸업에 필요한 졸업학점을 축소함으로써 강사 인건비를 줄이거나, 강의 당 폐강 기준을 20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등(KBS 보도) 강사법의 시행이 목표로 했던 교육의 질 향상과 강사 처우 개선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잘난 자들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와 강사노조, 대학 등으로 구성된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의 합의안 가운데, 대학평가지표에서 강사지표를 빼달라는 집요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책동은 국립대나 사립대, 이른바 명문대나 아닌 데나 마찬가지이다. 한국 대학이, 대학 행정가들이 어쩌다 이렇게 측은한 존재들이 되었을까?
 강사라는 위상은 대학교육에서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비록 강사 지위의 열악한 구조로 퇴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사는 역사학, 법학, 의학 등 해당 학문의 새로운 세대들이자, 정규직 교수들의 동료이다. 학생들에게는 해당 학문이 사회에 갖는 가치와 기여를 전달하는 엄연한 교육자이다. 또한 가족과 함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허나 이들 학문의 허리이자 동시대 시민들은, 그들의 터전인 대학과 동료이자 선배이며 스승인 정규직 교수들에게 외면 받으며 학문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던져야 했다.
 강사법 시행을 앞둔 지난해 11월 20일, 서울대 단과대 학장과 대학원장 22명은 강사법 개정이 “대학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국회의장 등에게 보냈다. '강사법으로 유발되는 재정적 적자'에 대한 우려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고생하는 학문혁신세대인 시간강사들에 대한 처우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원칙에 동의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고생하는 학문혁신세대'의 현실을 개선할 어떠한 조치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말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사진 출처 - 미디어숨


대안과 실증
 이들의 공허한 말이 나는 왜 이리 측은할까? 학문과 교육과 동시대인들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결여한 지식인들의 빈 깡통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대학 등록금과 정부지원금으로 평균 1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교수들과 직원들에게 연봉 800만원의 강사의 삶은 정녕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일까?
 아니라고? 그러지 않다고? 공감하고 있다고? 그럼 제안 하나 하자. 얼마 전 동료교수의 말에서 얻은 힌트이다. 대학 별로 교수들이 연봉의 10%를 삭감해서 그 재원으로 강사처우를 개선하는 데 쓰자. 세세한 방법은 각자 찾자. 《참고자료》(고려대학교 강사법관련구조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 2018년 11월 22일 문건)를 바탕으로 논증 겸 사례를 연구해보자. 물론 반론도 환영한다.


○ 2017년 고려대학교 결산안을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 전체 수업의 약 30%를 담당하는 시간강의료는 서울, 세종, 의대를 모두 포함하여 101억 정도(서울 83억, 의대 1억6천, 세종 16억).
- 101억 원은 고려대학교의 2017년도 총 수입인 6,553억 원 중 1.55%이며, 산학협력단 예산 약 3천억 원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은 1%로 떨어진다.
- 다시, 101억 원은 전체 교원보수 약 2,296억 원 4.43%. 이에 반해 대학 측에서 강사법 개정으로 추가되는 비용의 추정 최대치는 55억 원으로, 2017년 기준 학교 총 수입의 0.8%.(55억 원인 시간강사료의 인건비는 또한 교수 수당인 ‘교원각종수당’ 296억 원의 약 1/3에 해당)
∴ 고려대의 경우, 추가 증가 비용 55억 원은 교원보수 2,296억 원의 약 2.4%이므로, 10%가 아니라, 3% 이하만 삭감해도 강사법 정착에 문제가 없다. 이건 정부지원금을 뺀 수치이므로 그걸 보탤 경우 실제 수치는 더 내려갈 수 있다.


 이 정도의 노력으로 제자이자 후배들이 편히 또 그들의 후배이자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대학이 몰락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학자의 체면을 살릴 수 있다면, 무엇보다 양심이 조금 편해질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대부분 속으로 이 10%를 삭감하지 않을 이유부터 찾으리라는 것, 잘 안다. 또 구조적인 해결이 중요하네 어쩌네 하며 쌈짓돈이 줄어들 것을 걱정할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대학이 측은할 정도로 천해져있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연변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